가끔 수업 중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좀처럼 반응하지 않아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나서서 대답을 하면 다른 학생들로부터 「쟤는 왜 저렇게 잘난 척 하는지 몰라」혹은「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등의 야유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주변 사람들하고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보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제3자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여「끼리끼리」모여서만 인간관계를 형성하곤 한다. 대체적으로 규범이 엄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한다든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 평소에 하지 못했던 개인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그 집단의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공동체 규합의 수단으로「술」이 활용된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사회생활의 다양한 관계가 대부분 술을 연결고리로 해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특성을 보인다.

우리나라 대학생, 3명 중 2명 이상은 폭음

이러한 풍토는 성인 사회만이 아니라 대학생이나 심지어는 중,고등학생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대학은 진리가 탐구되어야 하는 상아탑임에도 불구하고「대학문화」하면 술이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로 성인 사회보다 더 심각하게 술에 절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오리엔테이션, MT, 축제, 각종 모임, 개강?종강파티, 선후배간의 단합대회 등에 이르기까지 대학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술은 대학생활의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례로 우리나라 성인들의 평균 음주율은 68.4%(남 83.3%, 여 54.9%)이지만, 2003년에 조사된 연구(천성수, 손애리, 2003)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음주율은 88.5%(남 88.9%, 여 88.2%)에 이른다. 2002년의 설문조사(천성수, 2002) 당시 대학생의 음주율 92.2%보다 약간 떨어진 수치이기는 하나 여전히 높다.

한편, 대학생 음주가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생들이 적당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3명 중 2명 이상은 폭음을 한다는 것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음자 중 2주일 동안 3회 이상 술을 마시는 상습 폭음자가 남학생 10명 중 4명, 여학생 5명 중 1명의 비율로 나타났다. 미국대학생의 음주율은 88.5%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나 폭음을 하는 비율(22.8%)은 우리나라 대학생의 음주율보다 훨씬 낮다.

음주 자체보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경험들도 심각

음주 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끊기는「블랙아웃(Black-out)」현상을 경험하는 비율도 우리나라 대학생의 경우 40.0%에 이른다. 폭음을 하면 다음날 수업을 빼먹거나(42.9%),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38.4%), 남학생의 경우 친구와 다투거나(25.1%), 다치는 경험(25.5%) 및 기물을 파손하는 경험(18.7%) 등 폭력과 관련된 행동경험을 하는 등의 경우가 상당히 많다. 게다가 남학생들은 종종 폭음으로 비롯된 성추행 등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일부 남학생들은 술자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학생을 추행하거나 심지어는 술 취한 여학생을 데려다 준다면서 강제로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2003년의 한 조사(천성수, 손애리, 2003)에 의하면 음주 후 계획되지 않은 성 경험률이 남학생 14.6%, 여학생 3.2%로 나타나 음주 그 자체보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차후 부정적 경험들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의 행동을 쉽게 눈감아주는 관대한 태도가 더 문제라 할 수 있다. 반면 서유럽의 경우 술을 마시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가 심각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사회적으로 아주 냉정하게 대하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관대하지 않은 사회적 태도를 감안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건전한 음주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자성의 움직임

해마다 건전한 대학생활을 설계해야 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술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발생하니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발식(술을 사발에 따라 마시는 의식)을 강권하는 불건전한 술 문화가 주요 원인일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최근 대학생들의 음주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전국의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도 음주문화의 폐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가지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들 스스로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술자리를 통해 선후배나 친구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술자리를 매우 긍정적으로 여겼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장점이 오히려 역으로 나타나 술을 위한 인간관계를 갖게 되는「주객전도」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대학의 MT 때에 술자리 대신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체험행사를 하는 학과도 있다. 예를 들어, 모 대학의 특수체육교육과에서는 술과 유흥으로 얼룩질 수 있는 MT를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애체험의 기회로 삼았다. 이러한 행사는 교육효과도 얻고 단합도 다지면서 술자리로 인한 부작용도 막을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풍속도가 술에 찌들고, 책 안 읽고, 취업준비에만 목을 매단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러한 행사들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 희망은 있다. 절주에 대한 교육, 정책 및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대학가의 음주문화가 바뀔 그 날이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술자리를 빌리지 않아도 단합할 수 있고, 술을 마시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보다 냉정해지고, 누가 가장 주량이 센가를 자랑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길 날 말이다.

손애리 / 삼육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