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술을 끊고 살아보고 싶다는 그는 보건소를 찾게 되었고 보건소 담당 간호사를 통해 알코올상담센터와 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 걸음 나아가 단주를 시작한지 7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 내소하였을 때만 해도 그의 무척이나 수척하고 어두운 그늘에 가려진 얼굴에 오랜 기간 마음의 어려움과 병이 깊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전날까지도 폭음을 했었다는 그는 술을 끊어보고자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의지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고 하였다. 알코올에 의존되어 있는 그의 신체와 마음은 술을 끊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하는 병에 이미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술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나는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술에 대해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의 청년시절부터 이어지던 음주는 며칠씩 폭음하는 나날로 이어지곤 하였다. 결혼생활을 해나가던 중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었고 아들이 사망한 후 아내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갔다. 이혼을 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부쩍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IMF 사태가 벌어지면서 실직하게 되었고 잦은 폭음으로 제대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 상황은 더욱더 어려워져만 갔고 어머니가 행상을 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삶의 고난들은 그에게 술을 찾게 하는 요인들이 되었고 더욱 그는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삶에서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과 위기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 해결방법이 매번 음주가 된다면, 그리고 음주로 인한 문제보다도 음주로 인해 얻는 즐거움에 더 비중을 둔다면 알코올 의존이라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와의 첫 번째 상담 이후, 그는 내소상담과 단주모임에 꾸준히 참여하였으며 불안, 초조, 불면 등의 금단증상과 우울한 기분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물치료도 병행하기로 하였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얼마나 치료 선상으로 들어오느냐, 본인의 단주 동기화가 얼마나 되어있느냐는 향후 재활정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술을 마시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지내다니 너무 좋습니다.’

그는 술 없이도 이렇게 생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새롭다는 듯 얘기하였다. 상담센터를 이용한지 1개월 남짓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센터를 찾기 전, 무기력하고 세상을 원망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영위해나가는 모습에 옆에서 돕는 나의 마음도 훈훈해졌다.

삶은 항상 예기치 않는 사건을 낳곤 한다. 단주생활하면서 일도 잘 하며 지내다가 배달 중 교통사고로 어깨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내심 이러한 일이 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 위험요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으나 그는 단주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믿음이 이 또한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됨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값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직업도 구했고 잘 해보려고 하는데 왜 나한테 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스럽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지금은 그동안 갑자기 열심히 일한 데에 대해 잠시 쉬라는 좋은 기회라고 좋게 생각하려 한다고 말한다. 한쪽 어깨에 깁스를 한 채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아쉬움과 실망스러움이 묻어나오지만 애써 웃음 짓는 얼굴 한편에는 그의 의지와 긍정적인 믿음이 엿보였다.

주치의의 따뜻한 한마디와 지지, 직장 동료들의 배려, 가족의 치료와 재활에 대한 관심, 단주모임 참여와 알코올상담센터에서 지속적인 상담유지 등으로 실직위기와 부상이라는 커다란 고비를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지지대가 될 수 있었다. 알코올 의존은 주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지체계들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아 가족, 친구, 직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망을 만들어가는 것은 큰 강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

현재는 사장님의 배려로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직원으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직업훈련학교에 다니고 있다. 예전에 공장에 다니던 경험을 살려 조그마한 세탁소를 겸한 수선집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설레임과 희망이 묻어나온다.

그의 회복의 여정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기대가 된다. 그 여정의 길에 함께 도움이 되는 상담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류지수 / 서울알코올상담센터 정신보건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