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채 한 장이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 있었던 한 해일수도, 아직도 고난의 행군을 하시고 계신 분들도. 어떻든 많은 차이와 변화 속에서 어김없이 다가오는 송년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영광이 내년에도 이어지길 바라고, 후자 분들은 와신상담 재기를 노리며 새해설계에 바쁘겠지만 복된 시간을 갖고 싶은 모든 분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동력은 역시 건강이다. 이것만이 영광도 재기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건강위해요인을 피하여야 하는데, 연말과 함께 더욱 문제되는 알코올이다. 그리운 사람 만나서 한 잔, 양이 덜 차서(?) 더 한잔, 어쩐지 그냥 헤어지기 싫어 마시다 보면 깜작할 사이 자정을 넘긴다. 늦었다고 귀가를 서두르면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 교회종소리가 울릴 즈음에야 집 현관에 당도하여 자는 둥 마는 둥 출근을 서두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토끼 같은 가족을 보니 도저히 쉬지 못한다. 가족의 잔소리는 한 몫 거둔다.

이, 삼일을 지나 보름, 한달까지도, 달력에 온갖 빨간 색으로 덧칠된다. 얼마나 어떻게 나쁜지는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눈귀가 아프도록 보고 들었을 테니까.

애주가라면, 선천적으로 술이 잘 받는다면 좀 낳다.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마시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진정 자발적으로 술 마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일게다.

12월 한 달만 참으면, 거부 용기를 가진다면 눈부시게 주머니도, 건강도, 그리고 가족과 사회전체가 행복해 질 텐데--- 도저히 12월이라는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완전 타의 음주자나 주맹(酒盲).

친구 전화목소리도, 휴대전화 벨 소리도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개인보다 집단의 목소리가, 의리가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는 음주회피는 자칫 비겁으로 낙인찍힐 염려도 있다. 하여 억지 음주를 해야 하고, 날마다 듣는 상사의 잔소리를 또 들어야 하고, 만취자들의 뒤처리를 담당해야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이는 거의 정신적, 육체적 고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정녕 12월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방안을 보내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언젠가 인권변호사 한 분께서 음주를 못하시면서 꼭 모임에 참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분처럼 지혜로운 분은 참석과 음주사이를 아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슬기롭게 극복했으리라 생각해보았다.

먼저 개인의 차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흡연자로부터 비흡연자를 보호하듯이 애주가들은 ‘술 못 먹는 사람’의 처지를 헤아려야 한다.

둘째, 밤 모임보다는 낮 모임이 어쩔까? 주머니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 될.

셋째, 부득이 저녁모임이면 가족을 동반하거나 술 대신 다른 음료나 차로 대신 하는 약속. 술, 담배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편견 없애는 일에 동참하자.

넷째, 만남을 내년 초로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신년회처럼. 어차피 우리 설날은 음력설이고, 그 이전에만 한다면 송년회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당장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송년문화를, 음주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건강한 생활 속에서 건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개척해간다는 열정으로 이를 시행한다면 만나는 날도 만족하고 다음 날도 넉넉한 송구영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형철 / 대한보건협회 광주전남 지부장․광주동구보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