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리 금주학교 뒷산에 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던 어느 봄날 필자는 한 알코올중독자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가정폭력상담원 양성교육 과정에서 「알코올중독자 가족상담 요령」을 강의한 관계로 필자를 알게 되었을 어떤 여성의 전화(1366) 상담원이 그 부인과 상담하던 중 어떤 형태든 필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언질과 함께 필자를 소개했다며 『알코올중독자인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퇴직 후 알코올중독에 빠진 남편 때문에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의 사례

당시 54세인 남편은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오래 근무했으며 퇴직 후 건설업으로 어느 정도 재산도 모았고, 다행히 자녀도 바르게 성장해서 아무런 걱정이 없으나, 남편이 사업체를 정리해서 모 대학교 근처에 원룸을 지어 임대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매일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술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라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겠는데, 임대사업 자체가 별로 할 일이 없다 보니 매일 주변의 할 일이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판과 싸움판을 벌이는가 하면,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잠들기 일쑤이고,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니, 창피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자신은 물론 출가한 자녀까지 나서서 남편이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아도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이젠 이혼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상 흔한 사례이지만 부인은 매우 절박해 보였다. 상담자로서 필자는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부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가족들이 쓸 방법은 다 써봤다고 하니 이제는 가족들로써는 더는 쓸 방법도 없을 것이고, 다른 방법을 더 써 보아도 별수 없을 터이니, 이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편을 나에게 모시고 오는 일만 해주면, 내가 남편의 술 문제를 해결해 주겠으니, 마지막으로 이 방법만 더 써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이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인은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한동안 소식이 없어 필자는 이 가족도 역시 여느 가족과 같이 알코올중독자의 강한 부정심리, 즉 자신은 알코올중독이 아니라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 것이며,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술을 끊을 수 있다.」는 말만 계속하는 그 옹고집의  벽을 넘지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즈음에 그 부인이 예약도 없이 남편과 함께 필자의 사무실을 불쑥 찾아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필자가 수척한 모습의 두 부부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많이 힘드시죠? 괴로우시죠?』라고 물었다. 부인은 『네.』라고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으나, 남편은 눈으로만 『그렇소, 그런데 당신이 내가 마셔도 괴롭고 마시지 않아도 괴로운 내 심정을 어떻게 알고 있소?』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상담이 계속되는 동안 부인은 남편 때문에 고통 받는 본인의 심정을 필자와 남편 앞에서 마음껏 털어놓으려는 심산이었고, 중독자인 남편은 이따금 『그건 아니고』라는 말만 거듭할 뿐 죄인처럼 할 말을 못했다. 필자가 알코올중독은 죄가 아니라 질병이란 점을 상세히 설명하자, 남편은 공감하는 듯 외마디에 불과했지만 말문이 트였다. 마침내 알코올교육에 가까운 상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알코올중독은 분명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부부가 함께 깨닫게 되었고, 남편은 본인이 환자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알코올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문제는 물론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까지 질문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는 부인을 위로하며 단주를 약속했고, 부인은 불쌍한 남편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물었다. 4시간이 넘는 마라톤 상담을 마칠 무렵, 자녀도 함께 참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하며 올 때와는 달리 부부는 평안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후 5개월이 지나, 우리 금주학교 가족들이 새벽기도회도 잊고 알밤 줍기에 열을 올리던 추석 무렵, 부부가 건강한 모습으로 필자를 다시 찾았다. 부부는 『원장님! 원장님 덕분에 우리 부부는 행복을 되찾았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은 필자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이 알코올중독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시인하던 그 순간부터 단주를 결심하였다. 알코올중독자가 스스로 환자임을 깨닫고 시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상담과 교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영철|임마누엘 금주학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