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건강생활 편집자문위원장

이번 호에서는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인물과는 색다른 분을 모셨다. 지금까지 이 자리에 모셨던 분들은 대학총장, 장관, 국회의원 등이었다. 이들은 술을 거의 못 마시거나 절주운동을 앞장서 해온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때 알코올중독자였다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Alcoholics Anonymous, 이하 AA)」란 모임에 참여해 단주 운동을 벌여오고 있는 이웃집 아저씨(올해 65살이니 나이로 치면 할아버지라고나 할까) 같은 분을 모셨다. 그의 요청에 따라 사진도 정면에서 찍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였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 때문이다. 이름도 가명인 박길동으로 나가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독자들에게 바란다.

▶ 어떻게 하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까?

▷고 3때가 이승만 정권 말기였습니다. 4.19가 일어난 해였지요. 당시 마산(3.15부정 선거 규탄시위로 유명한 도시이며 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곳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마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바람에 졸지에 하숙을 하게 됐습니다. 공부도 잘 안 되고 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무분별하게 술을 마시다 재수, 삼수를 하고 원하지 않는 대학에 뒤늦게 들어가 다시 술로 지새다 보니 어느새 술 중독자가 돼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혼자다. 자식도 아내도 없다. 결혼은 했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를 견디다 못해 몇 년 만에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그 뒤 80년대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느라 정신병원을 오랫동안 들락날락했다. 한 번 입원하면 6개월 이상을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90년 한 정신병원에서 의료사회사업가로 일하던 ROTC 출신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그에게 AA란 단체를 소개해 주며 꼭 가보라고 권했다. 그는 첫 모임 때를 아직 잊지 못한다. AA에서 내건 구호는 『술 없이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는가.』, 『첫 잔을 피하자.』, 『단순하게 살자.』였다. 술 마실 때의 생활은 어떠했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가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선배가 털어놓았다. 그는 이런 선배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마침내 그는 AA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이제는 후배 알코올 중독자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1993년에는 AA한국연합 전국대표봉사자(이 모임에서는 회장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를 지내는 등 두 차례 대표봉사자를 지냈고 회계봉사자, 감사, 치료시설위원회 대표 4년, 대중홍보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AA라는 모임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어떤 단체인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193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외과의사와 한 증권투자가 등 2명이 만든 단주모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일랜드 출신 신부가 한국에서 활동하다 미국에 가서 이를 배워와 1982년 미8군 장교클럽에서 시작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165개국에 10만개가 넘는 모임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103개의 모임이 지역 별로 있습니다. 모임 때마다 연인원 1천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연 인원으로 따지면 수만 명에 이릅니다.

 AA는 한마디로 자조모임입니다. 이 모임에 열심히 나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치명적인 마수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 단주 의지를 재점검하다 보면 6개월이 지나고 이때가 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을 가지고 치료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돕고자 하는 사람을 단지 도와주는 일을 할 뿐입니다.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고 지금은 이들을 희망의 길로 이끄시는 전도사로서 우리의 그릇된 음주문화 실태를 말씀해 주시죠.

▷우리 사회는 술을 마시고 난 뒤 일어난 실수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을 올바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으로 이끌고 그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알코올 중독 상태인 사람이 적게 잡아 250만 명이고 많게 잡으면 500만 명에 이릅니다. 정말 심각한 상태입니다. 서로 사귀고 대화하고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문화가 아니라 술 자체를 즐기는 것이 우리의 음주문화입니다. 특히 음주연령이 낮아지고 여성음주가 많아지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빨리 시행해야 할 음주 관련 정책을 꼽는다면.

▷조기 성교육이 중요하듯이 조기 건전 음주문화 교육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술의 폐해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마다 보건교사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그런 일을 맡아야 합니다. 최근 파랑새플랜이다 해서 정부 차원에서 좋은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은 이벤트성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꾸준한 홍보와 예산 지원 등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끝으로 올바른 음주문화를 위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교육을 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곤 합니다.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재수가 없어서 골목에서 잡혔다.』는 등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운전은 간접살인 행위나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죠. 회원들 가운데에는 이런 일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고희 잔치 때 참석해 술을 권유 받고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얼마나 오래 살려고 하느냐』며 심지어는 맥주를 머리에 붓는 일도 있었다는 겁니다. 음주운전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회, 알코올 중독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모를 주는 사회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 알코올 중독자가 넘쳐난다. 자신 또는 그 가족, 친구들은 누가 알코올 중독자인지 잘 안다. 알코올 중독은 시급히 고쳐야 할 질병이다. 그런 사람에게 분명 AA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전화 02-774-3797, 웹사이트:www.aa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