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 대구가톨릭알코올상담센터 센터장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큰소리의 인사와 함께 활짝 웃는 얼굴로 김○호 씨가 센터로 들어선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깔끔한 이미지, 맑은 기운, 얼굴에 감도는 편안한 미소는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우리 센터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와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 3월,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주춤거리며 상담센터에 들어섰다. 어제까지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흐린 눈동자, 검붉은 얼굴빛에 피곤이 역력한 표정, 탁하고 어두운 분위기, 확실하지 않은 감정들로 인해 매우 혼란한 상태였다. 그는 술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고 무너져가는 듯한 자신의 모습이 두렵고 무섭다면서 술을 줄이는 방법을 원했다.

일주일에 2~3회 음주를 하고, 한 번에 소주 5병 정도를 마시며 1~2병 정도가 되면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면허정지 또는 취소된 사례가 5회 정도 있고, 음주 후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많았다. 또한, 음주로 인해 지속적인 직장 유지가 어렵고 음주운전과 무면허 음주 접촉사고로 교도소 수감 경험이 있는 등 사회적?법적 문제에 연루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전혀 잠을 자지 못하고, 술을 마셔도 2~3시간가량 잠을 자는 등 수면장애를 동반하고 있었다. 특히, 부인의 카드빚과 사채사용 등 금전적인 갈등과 가정불화로 인해 2003년 이혼한 상태였으며, 13세와 11세의 두 아들은 위탁가정에 맡겨둔 상황이었다. 현재는 동사무소 자활사업에 참여 중인 상태이며, 동사무소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권유로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최우선적 과제는, 본인의 음주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었다. 음주조절에 대한 지속적인 실패과정과 음주 후 문제행동이 유발시킨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절주가 아닌 단주로 목표를 전환하였다. 특히 음주로 인한 신체적 손상, 직업유지 실패, 법적 문제 동반, 가족해체 등에 집중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센터에서 실시하는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회복과정을 병행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렇게 김○호 씨와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며칠 전 김○호 씨는 100일 단주기념 파티의 주인공이 되었다. 안심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한숨 돌릴 수 있는 단계이다. 순탄한 과정으로 지나온 길은 아니었다. 수차례의 음주 유혹과 갈망, 경제적인 압박,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수치감, 신체적 고통과 나태한 마음을 극복하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만들어낸 100일의 정성이었다. 센터의 재활프로그램 참여와 병원 외래치료, 알코올의존자 자조모임(A.A) 참여 등 가능성을 높이는 희망의 동아줄을 모두 잡고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100일 동안 쌓인 내공의 힘은 그의 모습을 많이 변하게 했다. 알코올문제에 대한 병식(Insight)의 성장,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조정, 동기강화, 자기성장훈련, 긍정적 부모역할, 영적인 각성 등이 재활프로그램 과정에서 폭넓게 다루어졌으며, 건강회복과 정서적 안정, 가족들의 지지와 아이들의 웃음 속에 단주의 기쁨을 서서히 알아갔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이나 신념체계, 삶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김○호 씨는 지속되는 의문과 내적 갈등 속에도 단주와 프로그램 참여를 우선순위로 설정하여 여정은 묵묵히 계속되었다.

알코올의존자에게 단주일을 헤아려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힘이 부족한 초심자에게는 목표와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센터는 단주 100일을 축하해주며 힘을 북돋워 드린다. 백(百)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충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 백일을 채우고 살았던 것은 아이가 성인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예로부터 이를 기념하여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단군신화를 보면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내한 기간이 100일이고, 백일기도, 백년가약, 백전백승 등에서도 미루어볼 수 있듯이, 「백」이라는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아주 많다 혹은 오랜 기간, 모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알코올의존자의 단주 백일은 어떤 의미일까? 무수한 음주갈망과 유혹, 고위험 상황들을 극복하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인고의 시간이며, 회복자로서의 확률을 높여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 고비 넘긴 그에게는 또 다른 과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장애물이 그를 막아서고 그 장애물에 거려 혹여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가다가 넘어지면 재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계속 가고자 하는 마음, 그 동기가 얼마나 강하냐이다. 우리가 함께 희망을 가지는 것은, 김○호 씨에게 알토란같은 두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행복한 가정! 이것은 김○호 씨가 꿈꾸는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한 단계씩 도전해나갈 것이다. 여기서 함께하는 우리는 참 좋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