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례 | 청주알코올상담센터

우리는 어느 것이든 정도가 지나치면 중독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게임중독, 순간의 쾌락에 빠진 나머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게 하는 마약중독, 그리고 천천히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고 삶의 질을 저하하는 알코올 중독까지….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알코올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그들의 세계에서 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최소한 술을 마신 후 기억을 잃어버린 채 길거리에서 흔들리거나 매일 과도한 술을 마셔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야만 알코올 중독이라는 단어를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냉정하게 중독이라는 단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 봄. 우리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단정한 옷매무새의 정숙해 보이는 40대 초반의 여자 분이 들어오셨다.

센터를 방문하신 그분께서는 센터를 찾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남편의 음주문제에 대하여 그동안의 사정 얘기를 털어놓으시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본디 음주문화에 대하여 매우 관대하며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사회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상대방을 이해할 기회가 된다고 늘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도를 지나쳐 평상시 아무 문제없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서도 술을 마시고 들어온 후에는 과격한 행동과 언어폭력으로 가족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지만, 남편은 이러한 상태를 전혀 수긍치 못하고 자신은 극히 정상이라며 알코올 의존을 부정하기에 급급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센터의 도움을 받고자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여 남편의 성장과정 및 음주에 대한 문제의식을 파악하기 위하여 당사자의 내방을 권유하였다.

내가 알코올 의존이라고요? 무슨 소리!

이러한 처의 간곡한 부탁에도 내방을 극구 거부하던 S씨! 어느 날 갑자기 센터를 방문하였다. S씨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처의 강경한 행동에 마지못해 방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센터를 방문한 그는 말쑥한 외모에 좋은 직장과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던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S씨는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술을 잘 마시는 집안이라며 어려서부터 자주 술을 드시는 아버님과 그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며 술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님을 지켜보며 자랐고 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술이 형제들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는 매개체라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음주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1주일에 5회 정도를 마시곤 했지만 젊음이 있어서인지 심하게 술로 인해 고생을 하지도 않았으며 학교생활에 큰 지장을 줄 만큼의 부담을 느껴본 적도 많지는 않다고 하였다. 이후 대학을 마친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료와 때로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거의 매일 이루어졌으며 경제적인 여유로 인하여 밤늦게까지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때로는 지난밤 과도한 음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처가 술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도 술 좀 마셨기로서니 잔소리한다며 부부싸움을 하기 일쑤였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처가 불만족스러웠으며 술을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술 마시는 사람들 다 그렇지 뭐!』하며 자신을 위로하면서.

아직 나에게도 희망이…

S씨의 상담과정을 거친 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본인의 알코올에 대한 의존 정도를 인지시키고 그 사실에 대하여 인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단주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으며,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통해 단주에 대한 의지를 격려하고 지지하여 주었으며, 알코올의존 당사자 간의 정보를 공유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그 위기의식을 일깨울 수 있도록 제공하였다. 그 사이 황폐해진 자신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술로 인하여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가족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이 너무도 아쉽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자신 스스로 알코올에 대하여는 지극히 관대하고 정상적이라 판단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어둠의 그늘로 잦아들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에서도 술로 인한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S씨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