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을 넘긴 K과장은 1주일에 1회 꼴로 10여 명의 과원들과 저녁회식을 한다. 술을 좋아하는 일부 과원들은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만든 술잔을 돌리고 과원들이 돌아가며 K과장에게 다가와 마음을 담은 소주 한 잔씩 주고받은 후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과원들에게 한잔씩 받은 술만 해도 벌써 2홉들이 소주 2병을 넘기고 있다. K과장은 술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보통 소주 반병 정도까지는 무리가 없으나 과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는 마음이 약해 어쩔 수 없이 매번 자신의 주량을 훨씬 넘기고 만다.

회식 -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단결된 힘을 창출

직장에서의 회식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단결된 힘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의 문화는 서구의 개인 문화와는 달리 집단의 단결을 중요시하는 「집단 문화」의 특성이 있다. 술은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comm(둘이라는 의미) + unication(하나가 된다는 의미)]으로,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데 있어서 술만큼 효과적인 대화의 수단이 있을까? 서로 술잔을 주고받는 행동, 건배, 원샷 음주는 집단 속에서 나누어지는 일종의 대화이다. 여러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나 혼자만 빠진다는 것이 서구의 개인 문화에서는 쉬울 수 있어도 집단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는 상대방을 염려해주는 「배려 문화」의 속성이 강하다. 다른 사람이 주는 술잔을 거부하면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하여, 상대방을 배려해서 내가 마시기 싫어도 같이 마셔준다. 집단을 중요시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우리의 문화적 속성이 서구의 개인 문화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을 자신의 주량을 넘어 폭음에 이르게 하는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상대방의 의학적 주량과 건강을 배려해주는 음주 문화가 필요

누구든 자신의 주량은 대략 이 정도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해놓고 있다. 그런데 각자 자신의 주량을 정하는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어느 사람은 걸음이 비틀거리지 않을 정도, 어느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는 정도, 어느 사람은 필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 등 확실한 기준이 없이 다양한 주관적 기준만을 근거로 자신의 주량을 이야기한다.

 가장 확실한 의학적인 주량의 기준이 있다. 얼굴색이 붉게 또는 창백하게 변하는 시점이 그 사람의 의학적 주량에 도달한 시점이다. 알코올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각자의 술 분해 능력에 따라 체내에는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되는 시점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알코올보다 세포에 대한 독성이 무려 1,000배나 더 강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학적 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자율신경계를 교란하면 혈관의 이완과 수축을 조절하는 체계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얼굴색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미 안색이 붉어진 사람에게 술잔을 권하는 것은 마음의 정을 담아 드리는 것이 아니고 건강에 해로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을 술 잔에 담아 추가로 주는 행동이 되고 만다. 상대방의 의학적 주량과 건강을 배려해주는 회식 자리의 음주 문화가 필요하다.

하루에 2잔을 초과하는 음주를 과음(heavy drinking)으로 정의

어느 정도의 음주를 폭음이라고 해야 하는가? 미국 정부에서는 표준 1잔을 순수 알코올 12g(20도 소주의 경우 소주잔으로 1.5잔에 해당)으로 정하고 하루에 2잔을 초과하는 음주를 과음(heavy drinking)으로 정의하고 있다. 과음의 의미는 음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는 각종 의학적 통계 자료를 근거로 설정된 것이다. 폭음(binge drinking)은 1회에 5잔을 초과하는 음주이다. 폭음은 각종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5잔 이상의 음주는 대부분의 사람에서 혈중 알코올농도가 0.1%를 초과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1%이상이면 법적으로도 ‘만취’ 상태로 판정하고 법원에서의 판결 유형도 달라진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4% 정도에 이르면 뇌의 가장 깊숙한 연수 부위가 억제되어 호흡마비나 심장 마비를 초래할 수 있고 사망과 직결된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5% 이상이면 사망률이 50%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어울려 마음의 정을 담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고 우정과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우리의 좋은 음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주량을 배려해주고 건강을 염려해주는 「배려하는 음주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또한 이미 많은 직장인들이 술자리 회식 대신에 단체로 영화를 감상한다든지, 볼링 등 스포츠 경기를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느 직장에서는 회식을 단체 봉사 활동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집단의 단결력을 창출하는 방법은 음주 이 외에도 현명한 방법들이 아주 많다.

김종성 / 충남의대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