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중 / 한마음정신병원 원장

의미치료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유명해진 프랑클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다. 그는 욕망의 무조건적인 충족은 실존적 공허에 빠져 우울증을 불러온다면서 욕망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적절하게 절제해야 인생의 참맛인 행복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아마 절제의 미학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술은 알코올이라는 화학물질이 주성분이면서 가치중립적인 성질을 가진 기호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술이 개인의 기호품이면서 사회적 교류의 상징이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다시 말하면 술과 음주가 비언어적 의사전달의 중요한 매체이자 양식이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음주문화가 음식문화의 일부이고 한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음식문화에 압축되어 있다고 볼 때 부정적이고 병적인 사회문화의 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면서 역시 부정적인 음주문화의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술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부정적이고 역기능적인 영향에 관심과 비판이 격렬해져 음주문화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이 우세해지면서 차분하게 실체를 따져보는 작업에 소홀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분명히 동전의 양면에 대한 논의와 같아 무시되고 변질된 한 쪽을 되살리는 것으로 균형 감각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조선 중기에 임금이 앞장서고 온 국민이 힘을 합쳐 향음주례라는 아주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만들었었다. 개인적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전통 위에서만 만들 수 있는 눈부신 금자탑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고 수준의 문화라고 할 수 있었던 전통 음주 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통 음주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절제의 미학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술을 향락의 도구나 마취의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교와 접대의 도구로 인식해서 음주 시에는 예의에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하나의 문화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주도(酒道)라고 해서 일상생활의 법도로 실천하도록 한 것이다.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경우는 제사용이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경우로 제한하도록 해서 마시고 취하는 환각물질로서의 술이 아닌 신명을 받들고 교제를 위한 접대의 수단으로 술을 인식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어 정착시켰던 것이다.

충북 괴산군 증평읍 남하리라는 곳에 가면 「술바위 전설」이 있다. 그곳에는 지금부터 약 500여 년 전 옥녀가 베틀에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부르는 옥녀봉이 있었다고 한다. 옥녀봉에는 길가는 나그네가 목을 축일 수 있게 단 한 잔의 술이 나온다고 해서 일명 술 바위라라 하는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스님이 한 잔으로 부족했는지 더 많은 술을 먹고자 지팡이로 술 바위를 마구 쳤다고 한다. 그 후로는 술이 나오지 않더라는 얘기다.

욕망의 절제는 우리의 가치관이자 우리 민족은 절제의 미학을 추구했다는 것을 이 전설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민담은 수없이 많은데 대전의 식장산(食藏山)에 전해오는 얘기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의례로서의 술 마시기를 원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을 한결같은 예로 할 것을 요구하는 음주 문화를 발전시켰다. 향음 주례(鄕飮酒禮)의 정신을 알아본다.

첫째로 의복을 단정히 하고 자세를 흩뜨리지 말 것이며,

둘째는 음식은 정결하고 그릇은 깨끗이 할 것이고,

셋째는 행동은 분명하고 활발히 걸으며, 분명한 말과 침묵의 절도가 있을 것.

넷째는 존경, 사양, 감사할 때는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는 절과 말을 할 것.

마지막으로 사교와 접대의 도구이며 우아함과 운치의 풍류로 승화할 것을 하나의 예법으로 규정해서 일상생활에 도(道) 로써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전통 음주 문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대포 문화(大匏文化)가 있다. 대포는 큰 바가지를 말하는데 여러 명이 한잔 술을 서로 나눠 마시는 큰 술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잔 술을 서로 나눠 마시는 것으로 서로의 정신적, 정서적 결속력을 증진시킨다. 서로 이질 요소를 없애고 합심하는 융합의 의미가 있다. 대포문화는 다양하게 발달해서 옛날에는 관아마다 고유한 대포 잔이 있어 새로운 관원이 오거나 공회가 끝나면 서로 이질적 요소를 없애는 의미로 서로 나눠 마시는 습속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여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조직력과 결속력이 강했던 조직이 보부상 집단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를 말할 때 대포지교(大匏之交)라고 말하며 이들은 강한 결속력이 필요한 조직이었으며 그러한 전통이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만 독특하게 술잔을 돌려 마시며, 주고 밭는 소위 수작문화(酬酌文化)는 어쩌면 대포문화에서 나온 것 같다. 술잔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정신적으로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최고의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고 보며,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유형을 보여준다. 「위하여 문화」는 타인과 집단을 배려하고 위한다는 뜻이 있어 의미하는 바가 있다. 우리의 독특한 문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주문화의 왜곡에서 오는 폐해가 심각한 것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일찍부터 음주로부터 오는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전통 음주 문화가 있었다. 조상이 물려준 귀중한 유산이니 이를 다듬는 작업으로 왜곡된 문화를 바로잡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전통문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