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가정주부 K씨.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다 등교하고 나면 대낮부터 혼자 부엌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할 때쯤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식탁에 엎어져 자고 있다. 본래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K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헤 남편을 따라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낮 시간에 집안일을 끝내고 좀 한가해지면 혼자서 한두 잔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항상 술을 마시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술을 깨고 있었기에, 남편도 K씨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과거 우리 사회뿐 만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음주는 주로 남성의 문제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차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만큼, 음주 기회도 늘어나게 되면서, 여성의 음주 문제 역시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고한 「한국 여성의 건강통계」에 의하면 2001년 우리나라 여성의 알코올 의존 및 남용의 평생 유병율은 6.3%로, 이는 1998년 조사 결과에 비하여 무려 3.4배나 증가한 결과이다.

여성의 음주는 남성에 비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이 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스트레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가족 내 위기, 보상 없는 결혼생활, 가족내/경제적 스트레스, 우울증 등을 들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음주에 대한 죄책감과 당혹감은 음주를 숨기게 만들고, 집에서 혼자서 몰래 술을 마시게 한다. 또한 여성의 음주는 배우자의 음주 패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같은 양의 알코올 섭취시, 남성보다 여성의 혈 중 알코올 농도 높아

알코올의 신체적 반응에도 중요한 성별의 차이가 있다.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했을 때 체중을 고려해도 남성보다 여성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다. 이것은 남성에 비해 여성의 체지방 비율이 높고, 알코올 분해효소의 농도가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알코올 혈중 농도와 혈중 에스트로겐 치에 의해 알코올에 의한  간 손상이 남성에 비해 심하다. 음주 여성은 골다공증에 취약하며,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음주기간과 적은 평생음주량에도 불구하고, 뇌의 위축, 말초 신경염 등의 신경계통의 이상이 더 흔히 발생한다. 그 외에도 음주는 여성의 월경통, 월경과다, 월경전 불편감, 무월경, 황체기 기능 부전, 무배란, 조기 폐경 및 성기능 장애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여성의 음주는 남성에 비해 에서는 가정생활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음주를 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이혼 혹은 별거를 하게 되는 경향이 더 높으며, 성폭행이나 가정 폭력의 피해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어머니의 음주는 자녀의 유기 또는 아동 학대의 중요 원인이 된다. 알코올 중독환자가 아니더라도, 임신 첫 3개월간의 간헐적 음주로도, 「태아 알코올 증후군」이라고 하는 태아의 선천적 기형 및 신경계 발달 장애가 유발될 수 있다. 증상으로는 저체중, 발달 지연, 작은 머리, 심장 등 신체기관의 기능 저하, 안면부 기형, 간질, 학습 장애, 과잉행동, 집중력 저하, 충동성, 불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늦게 음주를 시작하고 따라서 음주 문제도 늦게 생기며, 남성보다는 적은 양의 술을 마시고, 혼자 마시며, 폭음보다는 규칙적 음주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여성은 음주 시작으로부터 알코올 중독에 이르는 속도가 남성에 비해 훨씬 빠르고, 지방간, 간경화, 고혈압, 빈혈, 영양결핍, 위장관 출혈, 소화성 궤양, 말초 근육병, 심근병,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신체적 합병증 역시 여성에서 보다 빨리 진행되는데, 이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치료적 개입을 할 수 있는 여유 기간이 더 짧음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여성 알코올 중독 환자는 남성환자에 비해 우울증, 성폭행,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폭식증 및 기타 약물 남용의 위험도가 높다.

간질환, 우울즐, 불안증 등 알코올 중독 이외의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 많아

여성의 알코올 중독의 치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은 알코올 중독 이외의 어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질환이 동반되어 있는지를 찾아내서 치료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는 남성 알코올 중독의 경우에 비해 음주량이 적고 음주 기간이 짧더라도, 간 질환이나 우울증, 불안증, 폭식증 등의 질환이 동반되는 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경우는 남성 환자에 비해 자신의 알코올 문제에 대한 수치심, 죄책감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아져 있기 때문에 이를 치료 과정에서 잘 다뤄야 한다. 특히 어릴 적의 신체적 혹은 성적인 학대가 있었는지를 확인하여 이를 조심스럽게 다뤄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 알코올 중독의 치료 시에는 가족 치료가 중요하다. 흔히 남편도 알코올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치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또 가족 치료 시에는 여성 음주자가 알게 모르게 겪고있는 가정 내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인 여성 역할만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환자를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심리적 치료 이외에도 최근 들어 개발된 날트렉손이나 아캄프로세이트 등의 항갈망제를 이용한 약물치료가 도움이 된다. 이 약물들은 술 마시고 싶은 욕망을 감소시키고, 일단 술을 마시더라도 폭음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는 항갈망제와 함께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여성의 경우는 수면제 혹은 신경안정제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약물의 복용은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 자신의 술 문제를 숨기지 말고 빨리 주변에 알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궁기 /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