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중소기업의 행정업무에 종사하는 김씨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회식이나 직장동료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언제나 「왕따」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술을 못 마시는 것이 직장생활에서 엄청나게 불리하다고 판단한 김씨는 술을 마시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체질적으로 술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마실 수가 없었다. 급기야 김씨는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음주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수술을 할 수 있는 지, 아니면 술을 잘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약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 것인지를 부연 설명하면서.....」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회사가 제공하는 술자리이외에 업무가 끝난 후 직장동료들끼리 술자리를 가지게 되고 이런 술자리에서는 여러가지 비공식 회사정보가 교환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에게는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사소통 채널이다. 하지만 김씨같이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술자리가 매우 견디기 힘든 고문의 장소이기도 하다.

과음, 폭음 등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사회적으로 약 9조원

직장인의 91.7%가 음주자라고 응답한 한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모든 직장인이 술을 마시며 마셨다하면 과음, 폭음을 한다. 그 결과 다음 날의 근무는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결근, 지각을 하거나 출근을 하더라도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자리를 이탈하는 근무태만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로 회사가 경험하는 생산성 손실은 25%에 이르고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약 9조원(2002년)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도 있다.

직장인의 음주로 인해 회사의 생산성이 감소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선진외국에서도 똑같은 정도의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대응하는 방법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다. 우리의 입장은 술 마신 다음 날의 근무태만을 있을 수 있는 극히 일상적인 것 중의 하나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별도로 마련하려는 생각이 없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구조조정과 같은 다른 더 힘든 일을 하더라도 음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을 예방하기 위한 일은 생각조차 않는다.

직장인을 음주폐해로부터 보호하고 회사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EAP

선진 외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차원에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한다. 대표적인 노력이 바로 「종업원지원프로그램(Employee Assistant Program, EAP)」이다. 음주에 대한 명확한 사내규정을 마련하고 음주로 인해 업무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종업원은 음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치료 또는 상담하는 서비스를 받게 상사가 도와준다. 이러한 서비스를 받는 다는 것만으로는 해당종업원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노사간의 합의를 해두고 있다. 필요한 경우(예컨대, 대중교통수단을 운전하는 것 같은)에는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음주여부를 측정하여 일정한 기준을 넘을 경우 (예컨대, 혈중알코올농도 0.02%)에는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내의 사고율이나 결근율이 감소하고 업무의 집중도가 올라가 결국 회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EAP가 가지는 이러한 장점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상업적인 EAP회사가 출현할 정도이다.

직장인을 음주폐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회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EAP가 이렇게 번창하게 된 배경에는 회사가 이런 제도를 도입할 경우, 회사가 부담하는 의료보험료를 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위한 좋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이 정착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제도를 회사가 도입하여 회사 차원에서 술을 덜 마시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직장인 개인이 또한 절주를 실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령을 익혀 실천한다면 직장인의 음주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씨가 판단하는 것처럼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사회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미리 「왕따」가 될 필요도 없다.

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직장생활을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하는 직장인은 쉽게 볼 수 있다.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술을 같이 마심으로서 다른 목적(재미있게 놀기, 스트레스풀기, 정을 나누기, 속에 있는 이야기 솔직히 하기 등)을 달성하려는 것을 인식하여 남들과 다른 개성이지만 (사이다를 마시지만) 목적달성은 함께한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의 음주가 변화하면 한국 사회 전체의 음주문화도 변화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직장인들과 회사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 본다.

김광기 / 인제대학교 음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