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우 | 전남지방청 순천경찰서

경찰관에게 있어 연말은 한 해를 마무리 한다는 의미 외에도 특별히 긴장의 끈을 조여 매야 하는 시기다. 한 해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계모임, 또는 직장 동료들과의 즐거운 송년 모임에서 자신의 주량을 넘은 과음으로 술에 만취된 채 길거리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잠든 이른바 노상 주취자가 의외로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노상 주취자

노상 주취자는 자칫 인명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된다거나 주취자 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강절도의 표적이 될 수 있고, 급기야 차가운 바깥 공기로 인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체온증으로 동사(冬死)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경찰관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보면 신발과 양말은 물론 양복까지 벗어놓은 채 몸을 떨면서 쪼그린 채 잠들어 있는 주취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귀가를 돕기 위해 신분을 확인코자 부득이 호주머니를 더듬는 경우에도 주취자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타인의 손길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의 경우는 정신을 차리려 몸을 일으켜 세워보려 해도 오히려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거나 알아듣지도 못할 욕설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처럼 흐릿한 의식 상태의 주취자가 범죄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주취자를 상대로 한 대표적인 범죄로 부축빼기를 들 수 있다.

부축빼기는, 주취자를 일으켜 깨우는 척 하며 주위 사람들을 속인 후 호주머니에서 지갑만을 교묘하게 훔치고 만약 피해자의 반항이라도 있을라치면 여지없이 강도로 돌변한다. 그런데도 막상 범죄가 발생했을 때 주취자는 범인의 생김새조차 횡설수설하며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그마한 단서조차 확보하기 어렵게 되고 그 만큼 범인 검거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주취자를 상대로 한 강절도 범죄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경찰도 연말특별방범활동 기간을 정해 이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스스로가 과음을 자제하고 범죄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노상 주취자 만드는 잘못된 음주문화

그렇다면 이 같은 노상 주취 자가 끊이지 않고 계속 생겨나는 것을 왜일까.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음주문화에 큰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놀랄 만치 관대한 면이 있다. 음주로 인한 시비나 폭력, 음주운전, 주취소란자에게도 오히려 「술 먹은 사람의 충동적인 실수니 덮어 주어야 한다.」는 식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인의 음주가 자유롭게 허용된다고는 하지만 음주 행위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웃에게 피해를 초래하고 심각하게는 사회의 평온에 해를 끼치는 행위들까지 「술에 취해 그런 것이겠거니」하는 너무도 관대한 우리의 음주 문화는 시급히 바뀌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과음하는 동료를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한 잔 더하라며 더욱 술을 권하는 게 현실이고, 이로써 정신없이 취하고 나면 책임져 줄 사람 아무도 없이 무작정 길거리에 쓰러지고 만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책임있는 술자리가 필요

 여기서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범죄 표적이 되고 마는 노상 주취자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는 다양한 대책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특별히 3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이 귀가까지 책임져 주는 기본적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혼자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을 텐데도 마치 길거리에 버려지듯 홀로 잠든 노상 주취자의 모습은 안쓰럽고 측은한 감정을 넘어 일행들에 대한 서운함 마저 들게 한다. 특히 이 같은 비응급 단순 주취자의 경우는 긴급구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추세에 있는 만큼 스스로가 각별히 주의하는 길만이 만약을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둘째, 자신의 주량에 맞는 음주 습관을 지켜 이를 초과할 정도로 과음하지는 않아야 하겠다. 술자리에서 미리 자신의 주량을 밝히고 이에 대해 일행들은 과도한 술 권하기를 삼가는 회식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셋째, 음주 후에는 필히 보호자나 대리 운전을 통해 최대한 빨리 귀가해야 하겠다. 차가운 겨울철, 술기운에 추운 줄도 모른 채 홀로 거리를 헤매다 쓰러져 잠든다거나,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신하고 음주운전 하는 만용을 부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음주운전의 경우 운전자의 음주 사실을 동승자가 알았거나 운전을 시켰다면 법에 의해 교사죄와 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음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또 다시 우리 곁에 다가 온 송년 모임의 음주. 그 즐거움의 뒤편에 도사리고 있을 범죄와 불행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 이웃들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