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56세)는 집에 있는 것이 힘들어 백화점이나
문화센터를 다닌다. 그녀의 남편은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러 새벽부터 나가고, 아이들도
학원으로, 직장으로 나가 버린다. 그녀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줄곧 혼자이다. 한 때는 가족 모두가
그녀의 도움이 없으면 안되었건만 이제는 그녀가
도움을 줄라치면 잔소리다, 간섭이다 하면서
귀찮아한다. 그녀는 혼자 집에 있으려면 가슴이
답답해오고 초조해지며 밤이 되면 TV를 켜놓아도
혼자 있는 것이 무섭고 잠을 이룰 수도 없다.
A씨(55세)는 지난 주말 남편과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의 인감 증명서 심부름으로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첫날은 인감 도장을 안 가져가서
헛걸음, 둘째 날은 위임장을 안 만들어가 다시
걸음, 세 번째 만에 겨우 인감 증명을 해왔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인감 증명서를 달라고
했다. 「잠깐 기다려요」라며 자신만만하게
백을 뒤졌는데 없었다. 정말 이상하다며 두
번째 뒤지다 생각해보니 간밤에 모처럼 백을
정리한 것이 아닌가, 쓰레기통을 뒤져보니
찢어져 버린 인감 증명서가 나왔다. 자식들은
내놓고 「치매」취급이요, 남편은 도와주긴
커녕 자기도 건망증 때문에 못살겠다고 성화다.
A씨 자신도 걱정이 되기 시작이다.「치매의
전조가 아닌가?」「자식도 못 알아본다는데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내가 가족의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걱정을 하다보면 건망증
증세는 더 심해지기도 한다. 자기가 자기를
못 믿으니 기분도 좋을 리 없다.
중년 여성들은 가족들로부터 구박덩이가
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운명인가? 중년 여성들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 대신 가족들의
인생을 도와주기 위해 살았건만 이제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누려야하는 지금, 남은 건 중년의
서러움이나 두려움뿐일 수밖에 없을까?
중년기는 「이해할 줄 아는 나이」「상담해줄
나이」이며,「유혹에도 고통스럽지 않은 나이」이다.
각자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자신감과
의무감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중년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유독 중년 여성을 늙어 가는 여자로만
여기는 것은 사회적 편견 탓이다. 젊음을 숭배하고
출산 능력이 있을 때에만 여자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중년기는 막을 수만
있다면 막고 싶은 인생의 단계이다.
그러나 중년의 여성은 분명 존경받는 이
땅의 어머니이며, 젊은 시절보다 훨씬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인 것이다. 가족에 대한 희생이야말로
여성의 삶의 목표인양 강요받았던 젊은 날보다
훨씬 다양한 삶을 영위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