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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들의 우울증

여성에게는 남성과는 다른 요인이 부가되어 우울증의 유병률이 남성 보다 1.5내지 2.5배까지 높다. 이는 주부를 비롯한 여성들에게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남성과는 다른 역할이 주어지므로, 심리적인 면에서 취약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된다. 더욱이 동양사회인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남성우월주의가 지배적인 관계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미미해, 이로 인한 좌절감, 실망감 등이 있을 수 있다. 거기에다 과거 「빈 둥지 증후군」으로 칭하였던 것으로 중년이 되면서 자식들이 성장하여 독립하여 감에 따라 느끼게 되는 공허감과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과 비교했을 때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등도 중년 여성 우울증의 요인이 된다. 중년기로 접어들면서 피할 수 없는 호르몬 등 신경내분비적인 변화도 뒤따르게 된다.

남성보다 1.5～2.5배 우울증 유병률 높아

중년 여성의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과거에 「갱년기 우울증」이라고 불리던 우울 증상이 흔하게 마련이다. 증상은 일반적인 우울 장애와 커다란 차이가 없이 나타나는데, 우울한 기분, 식욕상실, 불면증, 기력의 저하, 자존심의 저하, 집중력 감소, 절망감 등의 양상이 있으며, 특히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려는 경향 때문에 신체증상이 다수 나타나게 된다.

원인으로서는 생활사에 있어서의 실패라든지 사별 등 상실과 우울증이 연관되어 있고, 인격측면에서 살펴보면 대체로 자존심이 낮고 초자아가 강하고 대인관계가 의존적인 양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우울증이 특히 많다. 동양에서는 고부간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 등 가정생활에 있어서의 갈등이 심리적 요인 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생식주기와 관련되어 소인을 갖고 있는 여성들에서 정서 변화가 유발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예로는 피임약에 의한 우울증, 월경주기의 황체기에 보이는 우울증, 분만 후 우울증 및 폐경기와 관련된 우울증 등을 들 수 있다. 생식주기의 어떤 특정한 시기 동안에  성호르몬의 변동이 정서장애를 일으키는 특정한 취약성과 관련될 수도 있다. 성호르몬은 정서장애의 병인론과 밀접한 관계를 하고 있는 신경전달물질, 신경내분비계, 또는 24시간 주기계통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신체질환에 걸려 있는 경우에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으며, 질환이 심각할수록 보다 높은 빈도로 우울증이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이전 같지 않은 것도 우울증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또한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중년 여성의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국 등 동양문화권에서는 가족문제, 특히 부모나 자식과 관계 등이 서구사회와 비교해 볼 때, 높은 빈도를 보인다. 가족문제에는 고부간의 갈등, 가족구성원의 건강, 경제문제, 자녀의 학업문제, 결혼이나 사별 등을 통한 이별 등이 있을 수 있는데, 40~50대에 이르는 대부분의 중년 주부들은 가족문제 중 한 두 가지 이상을 겪고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여성 우울증 환자 1예를 들겠다.

50대 후반의 여성이 외래에 찾아왔다. 그녀는 3남매의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연로한 시부모의 맏며느리로서 충실히 지내왔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밤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한시도 쉴 틈이 없어 전혀 불평할 생각도 못해봤다고 했다. 피곤한 가운데도 늘 웃는 얼굴로 식구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들었더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시부모들이 좋은 분들이라 친부모처럼 따랐고, 아직 두 분 모두 정정해서 다행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녀들은 결혼했냐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그럼, 손주도 보셨겠군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림자가 언뜻 그녀의 얼굴을 지난다. 『예 있지요. 자주 못 봐서 그렇지 얼마나 귀엽다구요』

그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으면, 지금은 편안히 며느리의 시중을 받으며, 병아리 같은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 확신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큰 아들은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둘째 며느리는 환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외동 딸이 가끔 손자를 데리고 왔었는데 이제는 사위의 사업이 시원치 않아지면서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 이후 의욕이 없고, 식욕도 떨어졌으며, 잠을 못 자는 등 우울 증상이 심해졌다. 열심히 살고는 싶은데, 늘 피곤하고 울적하여 시부모가 보면 섭섭해 하실까봐 신경이 쓰이고, 누구한테 하소연하려 해도 막상 얘기 나눌 상대도 없다는 생각에 하고픈 얘기도 그냥 꿀꺽 삼키고 말아 우울증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상기 예에서 보듯이 중년 여성 우울증으로 확진되는 경우에는 곧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에는 약물치료, 정신치료, 집단인지치료, 정신치료극, 광선치료, 전기경련요법 등 개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책이 포함되어 있으며, 유전상담을 통해 우울증의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경한 정도의 우울증일 경우에는 자신의 힘든 점을 누구에겐가 툭 터놓고 얘기하여 환기하는 것도 좋은 치료책이 될 수 있다.     

중년 여성 우울증은 치유될 수 있는 병이다. 또한, 예후는 빨리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때 좋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겠다.

 이민수 / 고려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우울증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