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0일 중국 곤명(昆明,Kunming)의학원에서 열리는 국제환경보건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인 19일 출국했다. 아침 5시 10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이어서 새벽 3시까지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2시에 서울의대 앞에서 여행사 버스를 타고 동행하는 인사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국제 환경보건학회 참석은 서울대보건대학원 정문호 교수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한국환경보건학회((Korean Society of Environmental Health)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정문식 교수 등에 의해 창립되었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임국환교수가 회장이며, 연간 국내 학술대회가 2회, 국제학술대회가 2회 열린다는 설명을 들었다. 국제학술대회는 6월경 국내에서 외국인을 초청하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과, 12월 말경 아시아국가 중 주요 환경보건문제를 지니면서 연구하는 국가 중 1개국을 선정하여 공동 주최하는 형식을 빌려 방문하여 개최하는 것이 있다. 금번은 후자로서 중국 곤명에서 공동개최되는 국제학술행사였다.

 아침 8시반에 곤명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착륙을 못하고 성도공항에 기항했다. 기내에서 1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다시 곤명으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였으며 11시 30분이 좀 지나서 도착했다. 공항에서 본 '호반선경사계여춘(湖畔仙境四季如春)'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곤명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행은 동반한 부인 6명을 포함하여 39명이었다.

  오후에는 민족촌(民族村)을 방문했다. 운남성에는 26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이족(彛族)이다. 내가 과거에 북경에 갔을 때 민족박물관을 둘러보고 이족의 존재를 알기는 했지만, 그 때는 남쪽에 살고 있는 아주 소수의 민족이라고 인식했었다. 그러나 곤명민족촌에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 운남성에서는 가장 많은 소수민족으로서 300만명이 있고 널리 사천·귀주성 등에서 거주하며 총수가 660만명이라는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이족촌 입구도 특이 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족의 생활과 문화를 소개하는 곳을 가보니 장관이었다. 넓은 뜰 정면에 거대한 호랑이 얼굴과 머리상이 있고 그 앞에는 12지 동물 조각물들이 원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는 "Solar Calendar Square"라고 쓴 큰 조각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라는 설명이었는데 양력과 12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하여는 확실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시간을 나타내는데는 별 차이가 없는 줄로 안다.

  이족의 역사는 대단히 장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운남에 거주하였던 곤명인은 이족이라는 설도 있다. 티베트·버마어계인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노스족·나스족·니에스족·카이스족·사니족·아스족 등 100이 넘는 지족(支族)이 있다고 한다. 이족은 이들의 총칭이다. 한족이 예식용구인 정이(鼎彛)의 '이'를 민족명칭으로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彛)'자는 '떳떳할 이'로 알려져 있지만 영구히 변하지 아니하는 도(道)를 뜻한다고도 한다.  한편에서는 종묘에 비치해 두는 제기의 한가지라고도 한다. '크'(계, 계)가 돼지머리이고 쌀(米)과 실(絲)을 받드는 (공)것이니 제사와 관련이 있는 글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彛'는 '彛'의 속자이다. '彛'자가 나에게는 항렬자이지만 이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나의 이름의 한글자인 까닭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이족은 해발 1000-2500m 산지에서 거주하며 옥수수·메밀·귀리·쌀 등을 재배하고 양 등 목축도 영위한다. 이족에는 흑이(黑彛)라고 하는 지배층이 있고, 예속계층으로 백이(白彛)와 그 이하 등 3계층이 있다고 한다. 민족촌은 대단한 규모여서 나는 전동차를 이용했으며 페(白)족촌, 티베트족촌 등 몇 곳만 가봤고 다른 곳은 외형만 관광했다. 여러 민족의 전통무용을 감상하기도 했다.

  민족촌 방문 후 원통사(圓通寺)에 갔다.  곤명시내에서 유일한 이 사찰은 1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唐)대에 건립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남쪽에 대문이 있고 북쪽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원통사는 내리막으로 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통사에서 취호공원을 지나 식당으로 갔다. 명(明)대에 대지주의 별장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공원은 인공호와 여러 누각으로 유명하다. 흰 갈매기 떼가 판을 치고 있었으며, 이들의 배설물 때문에 호수는 비취색갈이 아니라 지저분한 탁수로 변해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갈매기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는 광경이 돋보였다.

  버스 창 밖으로 공원을 내다보면서 길금원(吉金園)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대단히 호화스럽게 꾸며진 고급식당이었다. '수색미찬'이라는 가무쇼의 이름이 눈을 끈다. 그야말로 중국미인들의 화려한 무용을 감상하면서 중국고급요리를 맛봤다.

12월 20일 오전 8시 30분. 한·중환경보건학회가 곤명의학원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의학원은 종합의과대학으로, 의과대학·보건대학원·치과대학·약학대학·간호대학이 산하에 있다.   의학원 이사장 王?平(Wan Canping)의 환영사, 임국환 한국환경보건학회장의 인사에 이어 나는 축사를 했다. 축사에서 나는 평소에 주장해오던 소견 두 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환경이 건강해야 인간이 건강해진다」는 소견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는 국경이 없다」는 소견이다. 사실 환경이 건강치 못한 곳에서 인간의 건강을 추구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늘날 환경이 세계화하고 있는 현실은 주지되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의 환경오염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환경오염과 직결되고 그 반대적 측면 또한 사실인 것이다.

  학술발표회는 4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부 Current Challenges and Countermeasure in Environmental Health in Yunan Province in China(중국 운남성의 환경보건 도전과 대책)와 제2부 KSEH Activities and Environmetal Health Issues in Korea; Past, Now and Future(한국환경보건학회의 활동 및 한국 환경보건과제의 과거, 현재, 미래)는 오전 중에 있었다. 제1부에서는 곤명보건대학원장(Ping Liu)교수가 운남성 환경보건의 과제와 전략에 관하여, Liang Zhang박사가 곤명시 슈퍼마켓과 호텔의 대기오염에 관하여, Tan Lai Yong 박사가 운남농촌의 환경보건에 관하여 각각 발표하였다. 제 2부에서는 김판기 박사가 한국환경보건학회에 관하여 소개하였고, 정문식 박사가 한국의 환경보건역사와 전망에 관하여, 박동욱 박사가 한국산업보건에 관하여 각각 발표하였다.

  오찬 중에 곤명보건대학원장과 환담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곤명보건대학원이 5년제 대학이며, 처음 3년간은 의학을 교육받고 다음 반년간은 병원, 반년간은 보건기관에서 각각 인턴생활을 하며 나머지 1년간 즉 5학년 때 공중보건학을 교육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보건대학원, 의과대학, 치과대학이 5년제이고 약학대학과 간호대학이 4년제라는 설명도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구 소련에서 도입되었고 사회주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했다. 또한 석사학위 과정생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합격률이 6대 1정도로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오히려 박사학위 과정생이 되기 위한 경쟁률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오후에는 제3부 Recent Studies Conducted in Environmental Health Field in KMC(곤명보건대학원의 최근 환경보건분야 연구)와 제4부Recent Studies Conducted in Environmental Health Field in Asian Pacific Countries(아시아 태평양 각국이 환경보건 최근연구)가 발표되었다.  제3부에서는 Xinan Wu박사가 RF 방사선에 산전폭로 된 쥐의 행동작용 시험에 관하여, Xiaoxiao Song 박사가 혼합살충제의 상호작용 분석에 관하여 각각 발표했다. 제4부에서는 양원호박사가 한국가옥의 이산화질소의 발생과 환기에 관하여, 정계헌 박사가 남극지방 대합조개와 한국해안지역 대합조개의 중금속 축적에 관하여, 문덕현 박사가 비소오염 토양의 생석회 동화·응결에 관하여 각각 발표하였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참석하는 학회여서 재미도 있었고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았다. 질문자의 질문내용을 다 듣기도 전에 자기 이야기만 하는 답변자의 자세가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환경보건학회는 1972년에 창립되었으며, 정문식 박사가 초대에서 7대까지 14년 동안 회장직을 맡아 기초를 다져 놨고, 그 후 구성회(8·9대)·박성배(10대)·이용욱(11-12대)·나규환(13대)·김영환(14대)·정문호(15-16대)박사를 거쳐 현재는 임국환 교수가 이끌고 있다.

21일 오전에는 석림(石林)을 방문했다.  곤명 남동쪽 120km정도 거리인 이족자치현속에 있는 거대한 경승지이며 총면적이 400㎢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광할한 카르스트 지형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바다였는데 2억 8000만전에 지각변동이 시작되어 석회질의 암반이 변형하게 되었다. 암면이 지표(地表)에 노출된 후에도 바람과 비로 인한 침식이나 지진 등으로 암산(岩山)이 깎여 그 결과 날카로운 석산이 출현했다. 그 모양이 돌의 삼림처럼 보이기 때문에 석림이라고 한다. 20-30m의 석회암 기둥 수천개가 입립하는 경관은 천조기관(天造奇觀)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카르스트 지형이란 석회암이 물과 탄산 가스에 의하여 용식 되어 생성된 각종지형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의 석화암이 분포하고 있는 평안남도, 황해도,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북동부, 경상북도 북부에서 카르스트 지형이 널리 나타나고 있다.  영월의 고씨굴, 단양의 고수동굴, 울진의 성류굴 등이 유명하다.)

  나는 다리가 좋지 않아 전동차를 이용했다. 석림 풍경구(風景區)는 7개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볼 만한 곳이 50곳 이상이라는 것이다. 다 보려면 1주일은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대석림, 소석림, 외석림 등의 외관을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울서부터 동행했던 여행사(Top Class Air Travel) 임성학 사장의 안내로 다른 4명과 함께 전동차로 돌다가 찻집에 들러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종업원 모두가 이족(사니족)이다. 그들은 자그마한 체격의 미모의 아가씨들이며 모두 특유의 민족의상을 입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차에 관한 설명이 일품이었다.  종류가 다른 여섯가지 차를 시음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동물이나 관음보살을 닮은 돌들이 인상적이었고 바위 위에 살고 있는 나무나 피어 있는 꽃은 신비한 느낌마저 준다.

 오후에는 구향동굴(九鄕洞窟)에 갔다. 석림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였다. 구향동굴이 발견 된 것은 90년대 후반이고 관광지로 개발된 역사는 5년 정도다.  그런 까닭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만 그래도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시설도 수준급이다. 입구로 들어가 약 40m의 승강기로 하강하면 호수가 나타난다. 10인승 배를 타고 레프팅을 하며 잔잔한 협곡을 바라보는 맛이 특별하다. 약 600m의 협곡 호수를 레프팅 하고 돌아와 동굴로 들어간다.  약 80m의 절벽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아래의 좁은 길을 따라 동굴로 들어간다.

 나는 다리 사정이 좋지 않아 처음부터 인부가 앞·뒤에서 드는 소위 「가마」를  타고 돌았다.  종유석과 석순들이 장관을 펼치고 있다. 웅사대청(雄獅大聽)이라는 넓은 홀에는 여러 가지 돌이나 기념물이 전시되어 있다. 더 가면 폭포가 나타난다. 상당히 큰 규모다. 동굴 속의 폭포란 상상하기 어려운데 막상 폭음을 내며 흘러내리는 폭포를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다. 선녀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선인동(仙人洞)도 볼거리고 절벽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바위논 즉 신전(神田)또한 인상적이다.

  신전을 지나 출구로 가는 좁은 길은 급경사여서 가마에 앉아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누워서 관광하는 셈이다. 앞·뒤 인부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대단하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거의 한 시간 반동안 가마를 타고 돌아보는 동안 조선족 가이드 한 사람이 나를 안내해줬다. 두 사람의 가이드가 우리팀을 안내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시종 나를 돌봤다. 이 가이드조차도 급경사에서는 숨소리가 요란했다.

12월 22일 오전에는 운남성 박물관에 갔다. 마침 운남성 출신 최고의 화가라는 분의 회화전이 있어서 관람하였다. 풍경화와 초상화가 주요 작품이었다. 박물관 전시품은 운남의 민족, 역사관계 및 미술 공예품 들이다. 약 6만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일부를 2층과 3층에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전국시대(403-221, BC)의 청동기 등을, 3층에는 소수민족의 민족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대관루(大觀樓)로 갔다. 대관루는 곤명시 서남에 있는 정원양식의 공원 속에 있다. 5000㎡의 공원은 곤명호를 사이에 두고 서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근화포(近華浦), 누외루(樓外樓), 화원(花園) 등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명나라 때 공원이 생기고 청나라 때 누각이 건조되었다.

  누각 중에서는 대관루가 가장 유명하다. 3층 누각이며 지붕은 노란색 루리(瑠璃)기와이다.  청나라 때 창건되었는데 당시에는 2층이었으나 1828년 수축 때 3층으로 되었다. 그 후 홍수 때문에 도괴됐지만 1883년에 재건됐다. 많은 시인들과 문장가들이 서산과 곤명호를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글을 이 곳에서 썼다. 그들의 시와 문장들이 대관루에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나라 때 문장가 손염옹(孫髥翁)이 남긴 180자의 문장이 유명하다. 곤명호의 풍치와 운남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는 대관루장련(大觀樓長聯)이 이것이다.  대관루장련은 천하제일장련'(天下第一長聯)이라고 선전되고 있다.  

  오찬은 云南人家라는 큰 식당에서 들었다. 운남성에는 26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특색있는 민족음식들을 제공하는 식당이다. 우리들이 들은 오찬은 이족 음식이란 설명이었는데 비교적 우리들 구미에 잘 맞는 음식이었다. 건립한지 1년 됐다는 식당건물은 수십 년의 역사가 있는 건물처럼 꾸며져 있는 대형건물이었다.  무대에서는 야간 공연에 대비해 연예인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세계원예박람원(世界園藝博覽園, World Flori-Expo Garden)을 관람했다. 1999년 5월 1일 개최되었던 세계원예박람회장을 이용하여 설립됐으며, 약 2.2㎢ 부지에 실내전시관과 실외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실내전시관으로는 중국관·인여자연관(人?自然館, Man and Nature Hall)· 대온실·과기관·국제관 등 5개관이 있고, 실외전시관으로는 죽원·소채과과원(蔬菜果果園)·분경원(盆景園)·약초원·수목원·다원·명화예석원(名花藝石園)등 7개의 정원이 있다. 이 외에 미·영·일·독·불국 등 32개국이 각각 자국건물을 건립하고 이들을 통하여 선전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기와집은 없었고 다만 국제관에 한국상품코너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많은 나라의 국가 원수가 방문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한다. 밤 11시 30분에 곤명공항을 떠나 23일 새벽 4시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나에게는 여러모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2005. 1. 20)

 권이혁 / 대한보건협회 명예회장, 전 환경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