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현력과 사교성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물질이 「술」이다. 알코올의 힘을 빌어서 말을 하고 체면을 뒷전으로 미루어 둔다. 이것이 모임마다 술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음주를 통해 수치심이나 조심성이 사라지고 나면, 타인에 대한 눈치를 살피는 일과 통제된 예의가 사라지고 비로소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술의 사회적 기능을 과대하게 인식하게 된다. 즉 술을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 주는 신비한 영약」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제2의 알코올 소비국

세계보건기구의 알코올 소비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알코올 소비량(14.40ℓ)이 슬로베니아(15.15ℓ)에 이어 2위이며, 일본(7.85ℓ)의 2배이다. 그러나 주류의 소비 형태를 면밀히 분석 비교해 보면 슬로베니아는 알코올도수가 낮은 맥주 류의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소주와 같은 짙은 농도의 주류 소비가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교적 음주보다는 취하기 위한 음주행위가 더 보편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술로 인해 소비되는 순수비용이 전 인구의 22%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시의 연간 예산액과 거의 맞먹는다고 하니 그 소비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 하다. 이처럼 지나친 음주소비로 인한 피해 역시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평생동안 알코올의존에 빠지는 비율이 16.3%(남자 25.8%, 여자 6.6%)로, 남자 4명중 1명이 그에 해당된다. 또한 2000년 한해동안 추정된 알코올의존자의 수가 약 1,428천명이었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술과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강력범죄의 많은 비율이 음주로 인한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단결과 친목을 위한 「윤할유」가 초래한 결과 치고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음주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방치해 두기에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음주문제,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수없이 많은 대책들이 제안된다 할지라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흡연과 관련해서는 사회문제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금연건물, 금연기업, 금연 캠퍼스 등이 매우 자연스런운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음주와 관련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야유회나 MT시 자동차 트렁크 속엔 각종 주류들이 가득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회에서 조차 잔을 부딪혀야 직성이 풀린다. 음주의 저 연령화가 심각하여 중학생의 16%와 고등학생의 45%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청소년보호위원회, 1999). 음주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증거이다.

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계속해서 미화시키는 한, 음주로 인한 문제가 사회문제로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음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술의 사회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우리사회는 술에 대해 감정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감정의 대부분은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피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일탈」은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과도한 일탈은 복구불능의 상황에 놓이게 한다. 더구나 그것이 집단화 될 때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절주」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각 개인의 가치변화가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의 가치변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범국민절주운동은 매우 시의 적절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시민의 일부에서 음주를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의미이다. 이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될 때, 음주문제 예방을 위한 정책과 사업들이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절주하는 사회환경과 국가적 정책이 필요

절주를 위한 사회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우리」의식은 매우 폐쇄적인 것이어서 개인이 절주하고자 해도 소속집단의 가치에 따르도록 강요된다. 특히 청소년 집단에서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청소년 집단에게 알코올의 접근도를 차단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류의 판매 및 출입의 감시, 효과적인 교육과 지도가 사회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훈련과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이 민주주의 기본원리임을 교육하여야 한다.

또한 음주를 미화하거나 판매를 촉진시키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시민운동 차원에서 모니터하고 규제해야 할 것이다. 술의 효능과 기능이 과장돼 나타날 수 있는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과 음주 후 근로 등에 대한 법적인 규제를 강화시켜 위험한 환경에서의 음주를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더욱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의 알코올 통제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법적·제도적·문화적 환경을 규제하고 변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알코올은 담배보다 사망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사망과 불능의 2.7%가 흡연으로 인한 것인 반면, 3.5%가 알코올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에 있어서 가장 큰 보건문제는 음주로 인한 문제이며, 개발도상국에서도 보건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음주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징인 소극성과 비 사교성을 보완해주는 것으로, 그리고 결속을 단단하게 해주는 물질로 미화된 채, 음주의 문제가 포장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천성수 / 삼육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