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애리 | 삼육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술집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어떤 사람들은 말이 많아져 조리없는 이야기들을 계속 반복하고, 또 한쪽에서는 술에 취해 곤히 자기도 하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간혹 논쟁의 정도가 심해지면 심한 폭언을 하거나 심지어는 기물을 파손하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행동들의 원인을 추측해 보라고 한다면, 아마 단번에 「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도 가지각색이고, 마신 후의 사람들의 행동도 가지각색이다.

술을 마시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술을 왜 마시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많이 하는 응답이 「불안을 해소하려고」 「기분이 좋아지려고」 혹은 「사교를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술은 처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과 억압을 해소시키고, 보다 잘 적응하게 하여 사교성을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술이 일시적으로 불안을 해소시키는 데에는 도움을 줄 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불안의 원인을 제거시키지는 못한다. 또한, 체내의 알코올 양이 증가하면 우울해지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술을 마시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져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 남자 친구의 술버릇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한 선배가 있었다. 선배의 남자 친구는 술만 마시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할 뿐만 아니라,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손찌검도 하고, 심지어 강제로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그 선배는 고민은 하지만, 정작 헤어지지 못하고 계속 만나고 있었다. 나중에 그 남자친구와 헤어졌냐고 물으면 「술만 마시지 않으면 그만한 사람이 없어」라고 하면서, 술에서 깨어나면 남자친구가 엎드려 빌고 매달리면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사귀고 있다고 하였다.

지금은 그 선배와 연락이 끊겨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당시 어렸을 적 필자의 생각으로는 서로가 그렇게 사랑하는데 그깟 술버릇이 큰 문제가 되겠냐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필자에게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가 상담을 요청한다면 당장 헤어지라고 할 것이다. 당시에는 술이 약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중독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성관계에서 취중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약물은 신경세포를 천천히 자극하여 신경계의 활동을 마비시키는 마취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술을 마실 경우 중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중독으로 발전하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여, 취중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성 관계와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는 취중 폭력을 사적인 행동 또는 일종의 성욕 표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폭력 행위를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술은 농경사회 이후로 일상생활과 종교적 의식의 제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 왔기 때문에, 술 마시는 자체가 문제시 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마시면 중독이 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중독(addiction)은 개인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떤 물질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게 되면 우리 몸은 이에 익숙해져서 술을 먹지 않으면 안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술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면 술 없이는 긴장이 유발되고,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술을 마시게 되기 된다. 따라서 우리가 술에 중독되면 술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강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는 점점 불가항력적이 되고, 술에 대한 간절한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한편 또 다른 문제는 술을 마신 후에 저지른 원치 않은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술에 의존하는 알코올 의존자는 10명 중 1명이나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술은 원치 않은 다른 위험행동이나 결과를 수반한다는 데에 있다. 폭력도 그 중에 하나이다. 실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2명 중 1명이 음주와 관련이 있었으며 특히, 폭력의 경우 10명 중 7명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 조사에서도 범죄자 10명 중 4명은 술과 관련이 있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사교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로 인식하나, 술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해로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평소에 조금씩 마신다 할지라도 나중에는 술 없이는 못살게 되고, 이로 인해 원치 않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술은 마약과 같다. 마약처럼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정말로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절제해야 할 위험 물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