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화 |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얼마 전 열렬한 폐인들을 양산한 TV 드라마로 소개되고 있는 한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간 본 적이 있다. 게시판에 올려진 소감들을 보다가 문득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내용은 남자 주인공이 술을 많이, 자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건강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주인공 역을 맡은 사람에 대한 염려라고 보이지만 또한 재미있는 글은 댓글. 담배 피우는 장면은 없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담배는 위해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가고 있다. 그러나 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이 드라마의 게시판에는 술 잔을 잡는 주인공의 손에 대한 글도 있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술 잔을 잡는 장면도 아름다운데 술을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가 없다.

술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드라마

드라마에 푹 빠진 폐인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그 움직임 하나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드라마에 기업들이 협찬을 하거나 간접광고를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주인공이 술을 마시면 실제로 그렇게 마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듯이 그러한 장면들은 시청자들에게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2004년 5개월 간 22편의 드라마에서 음주장면을 모니터링한 결과, 5분마다 음주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도 있었다. 특히, 한 번 마셨다하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까지 가는 장면이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다. 문제는 드라마에서의 음주장면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에서 매일 몇 번씩 선망의 대상들이 멋있게(?)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2003년 조사에 비해 2004년 음주장면의 노출빈도가 늘어나 시청자들이 음주장면을 보는 횟수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괴로울 때나 무엇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반드시 음주장면을 동반하고 있고, 음주에 대해 문제를 삼은 적이 거의 없어 음주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계속 부추기고 있다. 50분 방영의 한 단막극에서는 음주장면이 10회나 나와 5분 간격으로 술 마시는 장면을 보여 주었듯이 모든 문제를 술로 해결하는 이러한 드라마들은 결국 술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드라마인 셈이다.

음주장면들에는 간단히 술을 한 잔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적정음주량을 넘는 술을 마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정신을 잃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지나친 음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 주로 여주인공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 길가에 쓰러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귀가하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드라마에서도 술 마신 여주인공을 엎고 가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 여자 주인공들의 이러한 장면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거나 드라마 전개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면서 술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매개로 시청자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우려되는 사항이다.

그리고 소주나 양주를 병 채 마시거나, 사발에 부어서 그대로 마시는 음주형태나, 소주를 혼자 3~5병을 마시는 등 지나친 음주형태들이 분노, 괴로움의 표현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도록 하는 것은 건강의 가장 큰 적인 술의 위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위이다.

지나친 음주장면은 자제되어야 한다

드라마에서 여고생들의 음주 장면이나 병원 침대 위, 공원, 놀이터, 수영장, 차를 옆에 세워 둔 채 등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사람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또한, 음주 후 운전을 하거나 수영을 하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여과없이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너무 자주 방영된다.

술이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16조 원에 이르고, 가정폭력이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드라마에서의 지나친 음주장면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