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많이 지쳐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딸의 손에 이끌려 알코올 의존 클리닉을 찾았다. 이 여성은 55세로 5년 전 남편이 위암으로 사망하고 혼자 된 이후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나름대로 마음을 달래려고 한두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한 두잔씩 마시던 술이 이제는 하루 종일 취해 있을 정도로 음주량이 많아지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 초조하고 안절부절하며 손이 심하게 떨리는 등 금단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환자는 미혼이었던 막내 딸과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주로 낮 동안에 술을 마시고 딸이 귀가 한 이후에는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감추었고, 또 잠자기 전에 방에서 몰래 마셔왔기 때문에 각자 사회 활동을 하고 있던 자식들은 환자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병을 키우게 된 원인이 되었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같은 양을 마신다고 해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진행되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위 환자의 경우도 채 2～3년도 되지 않아 알코올 의존증으로 진행되었으며, 5년이 지난 현재는 금단증상과 내성이 모두 나타나는 중증의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환자는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었으며 술을 마신다는 사실 자체로, 수치심과 함께 자식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등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알코올 의존 여성들은 우울장애, 감정부전증 같은 질환이 생길 수도

남성 알코올 의존 환자들에 비해 알코올 의존 여성들은 과도한 음주로 인해 우울장애, 감정부전증 등과 같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여성에서 우울증 등의 정동장애가 있는 경우 2차적으로 알코올 의존증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경우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는 하나, 역시 가장 흔하게는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남편과의 문제 등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최근에는 경기 악화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 등 사회적인 문제에 따른 스트레스 등이 알코올 의존을 악화시키는 대표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렸을 때 성적인 학대, 신체적 폭력 등에 노출된 여성들은 많은 수에서 알코올 의존이나 섭식장애로 진행될 위험성이 크다고 하며 이런 여성들은 2차적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게 될 경우 과도하게 오피오이드 체계가 항진되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환자들은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한 노출이 중단된 이후에도 신체적으로 증가된 오피오디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알코올 및 기타 약물에 의존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어 직장 여성인구가 많아지고 여성 음주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이전에 비해 관대해지면서 여성의 음주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알코올 의존의 경우 과거에는 남성에서 흔하게 나타난다고 하였으나, 최근 청소년기의 여성 음주가 늘어나면서 여성 알코올 의존 환자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지방의 비율이 높고 수분량이 적기 때문에 동일한 양의 술을 마셔도 빨리 취하게 된다. 또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남성보다 적어 신체적 문제가 빨리 나타날 뿐 아니라 알코올 의존, 알코올성 치매로의 진행이 빠르게 나타난다.

여성이 술에 취약한 여러 부분 중 특히 내분비계에 있어 술은 생리불순이나 생리통을 유발할 수 있고 불임과 조기폐경의 원인이 되며 폐경기의 여성인 경우 신체 내의 비타민과 칼슘의 활용도를 떨어뜨림으로서 골다공증으로 쉽게 진행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임신 첫 3개월 동안 단 한번의 음주에 의해서도 태아의 신경계 발달 장애가 유발될 수 있으므로 가임기 여성의 경우 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성의 알코올 문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적인 측면에 있어서, 남성에 비해 여성은 술에 취약하고 알코올 의존으로 진행한 경우 불안장애나 우울장애와 같은 동반 질환이 많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치료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많이 따른다.

위의 환자에서 보듯이 여성 알코올 의존 환자의 경우 혼자 숨어서 마시고 낮 동안 마시며 저녁에 남편과 자식들이 귀가한 이후에는 마시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알코올 문제가 상당히 진행되기 이전까지는 환자가 알코올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현재 알코올 치료는 거의 남성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으며 여성만을 위한 적절한 치료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가족들 또한 여성이 알코올 문제로 치료받게 되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치료받을 기회 자체에 제한이 있다. 그리고 여성 자신도 알코올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알코올 의존증 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므로 선뜻 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술을 마시게 되는 원인에 대한 상담과 적절한 약물치료가 필요

그러나 일단 알코올 의존으로 진단 내려지는 경우 본인의 의지로 금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 여성 알코올의존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위의 경우처럼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있어 자가 치료로 술을 마시는 경우 음주행동이 알코올 의존으로 이환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술을 마시게 되는 원인에 대한 상담과 적절한 약물치료로 이를 교정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알코올 의존의 치료에는 가능한 한 여러가지 치료법을 동원하는 팀 접근 (team approach)으로써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할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알코올 의존은 재발이 쉽고 회복되기 어려운 만성질환으로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음주에 있어서만은 남녀평등을 주장하기보다 항상 적정량 이하의 절제된 음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윤수정 / 성바오로병원 신경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