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적당한 때, 알맞은 양의 술을 사회적으로 건전하다고 인정되는 곳에서 마시면 큰 이익이 되며, 알맞지 않은 때나 장소에서 폭음을 하면 큰 손해가 된다. 소량의 술은 매일 마셔도 좋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어지간히 굳은 결심을 가져도 술을 조금만 마시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잔 수가 늘어나기 십상이고 이에 비례해서 심장에 주는 위험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지구면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다에 빠져죽는 사람보다 조그만 술잔에 빠져죽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바다의 신(Neptune)보다 술의 신(Bacchus)이 더 무섭다는 우스개 소리도 존재하는 현실이 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정보확보에 무지

전통적인 우리 술 문화는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술을 마시는 예절을 소학에서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을 마시는 범절이 깍듯하였으며, 술을 먹는 모임에는 모름지기 노래와 춤, 시조를 곁들임으로써 운치를 돋우어 우아하고 고결한 풍류로 승화시켰다.

우리 선조들은 음주에도 철저히 예를 갖췄다. 주도가 바로 그것이다. 「계주교서」와 「향음주례」는 조상들의 음주예절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계주교서」에서 이르기를 향음의 예는 친목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고 밝힌다. 마시기 위해 술을 만든 것이 아니고 신명과 빈객 접대, 노인 봉양을 위한 것이다. 분별없는 향음은 화를 자초하기에 음주시 각종의 절차와 순서의 예를 제정하여 계주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주류 소비자 중 술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소비자들의 무지에서 그 원인을 찾기보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로 다양한 술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환경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정보확보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해 온 소비자들의 탓도 무시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어떤 술을 어떤 경우에 누구를 위해 마셔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 원칙론이 아직까지 우리 소비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량에 관계없이 강권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게다가 음주에 따른 소비자 위험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공식적으로 확인된 음주관련 질병 사망자가 연간 2만여 명에 달하며 음주사고 사망자는 약 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특이한 음주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음주가 문화적 향유이자 생활의 보조기능으로가 아닌 각종 만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한 필수적 통과의례로 기능하고 있다. 소위 생존을 결정짓는 「전투적 음주문화」로 특징지어질 우리의 음주문화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색적인 현상을 파생시키고 있다.

술 깨는 약을 사들고 술을 마시러 가는가하면 짧은 시간에 빨리 취하기 위해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등 폭탄주를 제조해 마신다. 수작문화의 잔재인 잔 돌리기는 기본이며 순식간에 마셔야 하는 원샷(One Shot), 노털카(놓지도, 털지도 말고 카 소리나게 마심)가 강요된다. 이로써 음주자들은 스스로의 체질과 심리적 상태에 따른 음주량과 속도를 통제하지 못해 과음 현상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술로 타는 속을 술로서 푼다는 비상식적인 해장술 개념이 통용되고 있고 과음 후 나타날 수 있는 주사를 너그럽게 용서하며, 심지어 서열과 연공을 무시하는 폭언을 허용하는 야자타임을 갖기도 한다.

우리 술 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량에 관계없이 술을 강제로 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권하는 술의 극치가 바로 예외없이 마셔야하는 폭탄주이다. 폭탄주와 같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면 취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게 된다. 우리는 폭탄주를 사회문제시 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큰 잘못이다. 그 결과 즐겁고 의미있게 진행되어야 할 대학생들의 신입생 환영회가 허망하게도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모임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음주를 강요하면 범죄 행위로 규정하여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술은 스스로 통제 가능할 때까지만

주도란 술을 바르게 마시는 도리이며 예의범절이다. 혹한기의 추위나 농주(탁주)와 같이 힘든 일 등과 같은 고난극복을 위해 마실 경우를 제외하곤 술은 배부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취흥이 주는 맛과 멋 그리고 활력 때문에 마시는 것이다. 술을 바르게 마시는 주도의 진수는 자유자재한 취흥의 호방성을 살리면서도 지킬 것은 깍듯이 지키는 기와 이의 조화에 있다. 즉 술은 마시되 스스로가 술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절도 있게 마심으로 술이 사람을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 주도의 3대 기본 철칙

주도의 기본 철칙은 다음과 같이 3가지 항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술을 마시도록 해야한다(절제:人呑酒). 그리고 술과 나를 알고 마시도록 해야한다(지식:知彼知己). 마지막으로 멋지게 마실 수 있도록 해야한다(주법/매너:風流).

 

제1철칙: 사람이 술을 마신다(절제:人呑酒)

주도의 첫 번째 기본은 절제이다. 법화경에서는 술을 마실 때 꼭 생각해야할 절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문구가 있다. 이에 따르면 술을 마실 떄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初則人呑酒). 마신 술의 양이 많아질수록 술이 술을 마시게 되며(次則酒呑酒), 급기야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되어 스스로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後則酒呑人).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주량에 맞게 절제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술을 마셔야 한다.

 

제2철칙: 술과 나를 알고 마신다(지식:知彼知己)

주도의 두 번째 기본은 자신과 술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이 술을 마실 때에도 자기 자신의 주량과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태와 마시는 술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음주에 따르는 위험이 덜해 질 것이다.

 

제3철칙: 멋지게 마신다(주법/매너:風流)

주도의 세 번째 기본은 주법에 맞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왕에 마시는 술 보다 맛있게 품위 있게 마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멋지게 술을 마시는 방법은 그 술에 관련해서 통용되는 관습과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즉 통상적 주법에 맞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풍류를 더해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 격이 된다.

 

정헌배 / 중앙대학교 교수·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