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여름호와 가을호에서 「술로 인해 몸도 상하고 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는 사례」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였는데, 이번 호에서는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1)에서 심의·결정된 구체적인 사례들을 유형별로 전재코자 한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술 자리가 많은 만큼 이 땅의 주당제위(酒黨諸位)들께서는 보다 관심있게 읽어 주시길 바라며….

사례 1. 취객끼리 우발적 시비 끝에 상호폭행

신청인은 2003. 10. 23. 01:00경 △△시 △△동 소재 △△삼겹살집 화장실에서 손님 김△△과 눈이 마주쳤다2)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다투다 「안면부 심부열상」등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았다. 피신청인(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신청인의 부상이 「쌍방폭행」에 기인하였으므로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급여의 제한] 및 제52조 [부당이득의 징수]에 따라 공단 부담금 1,202,340원을 환수처분하였다. 이에, 신청인은 김△△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였고, 상호 300만원에 합의하였음에도 피신청인이 이와 같이 처분함은 부당하다며 이의신청을 제기하였다.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에서는 △△지방검찰청의 「불기소 결정문 및 의견서」, △△지방법원의 판결문 및 신청인의 자필 진술서 등을 종합할 때, 신청인의 행위는 범죄행위임이 명백하므로 피신청인 공단의 처분은 적법·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살피건대, 형법 제260조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2조와 관련 「쌍방폭행」의 경우, 폭력행위자들 사이에 공방이 교차하므로 어느 일방의 행위만을 공격행위 또는 방어행위라 할 수 없고(대법원 92도1329, 83도3020 등), 상해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견·인용한 심리상태인 「고의」내지 「미필적 고의」에 기하여 이루어진다 할 것이다.

또한, 범죄의 구성요건이 아니라 처벌·소추조건이 결여된 경우나, 기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기소되지 않은 경우는 범죄행위의 성립에 지장이 없고, 이 사건에서 쌍방간 법익침해 정도에 있어 비록 현저한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신청인의 폭행죄 성립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사건 제2005-109호(부당이득금환수고지처분취소신청, 2005. 4.30. 결정)

사례 2. 음주 후 철도용지 내에 무단침입하다 부상

신청인은 2004. 7. 7. 22:40경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중 용변을 보기 위해 △△시 △△동 소재 철도용지(△△역 750미터 지점)에 들어가려고 약 3.5m 높이의 출입방지용 담장에 올라갔다 추락, 양쪽 대퇴부에 부상을 입고 쓰러져 KTX기관사 등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 진료를 받았다.

이후, 피신청인은 이 사고를 국민건강보험법 소정의 급여제한 대상으로 판단하고 보험급여비 9,400,910원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 처분하자, 신청인은 「만취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였다」며 이의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에서는 이를 기각하였다.

살피건대, 최초 진료기록부에 「정신상태 alert(명료)함」으로 기재된 사실 등으로 보아, 당시 신청인이 비록 주취상태였다고는 하나, 명정(만취)상태로 인하여 책임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거나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 특히, 철도용지에 들어가면 통행하는 열차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상존하고, 3.5m나 되는 담장 위에서 추락하면 부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할 것임에도, 용변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도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철도용지에 진입하려 했다는 신청인의 주장은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렵다. 사건 제2005-470호(부당이득금환수고지처분취소신청, 2005. 8.31. 결정)

사례 3. 음주 후 흥분상태에서 유리문을 발로 찼다가 부상     

신청인은 2005. 4. 5. 07:00경 새벽일을 마치고 음주상태에서 자택인 △△시 △△동 △△아파트에 이르러 소변을 보려고 아파트 관리소 화장실로 갔으나, 문이 잠겨있기에 화가 나서 발로 유리문을 찼다가 우측 발목의 삼각인대가 파열되어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피신청인은 이를 고의에 의한 사고로 보아 급여를 제한하였다.

이에, 신청인은 화장실 문을 발로 툭 밀다가 깨진 유리틈에 발이 끼여 다친 것이라며 항변하였으나,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에서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살피건대, 의사는 진료시 의료법에 따라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소견을 진료기록부에 상세히 기재하고 서명하는 바, 그 기록은 객관적으로 진정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고(대법원 97도1234), 사고직후 최초로 내원한 요양기관 진료기록부의 상병발생 경위는 수진자 및 이송자와 최초로 문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그 진술은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96도1540).

또한, 소방서의 구급활동일지 역시 권한있는 국가기관이 작성한 문서라 할 것이므로, 사고 당시 신청인이 비록 주취상태였다고는 하나 「의식이 명료」하였고 「발로 유리를 차서 깊이 째져 출혈」이라는 기록은 객관적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할 것이다.

특히, 문의 유리는 바닥으로부터 1m이상 높이에 부착되어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발을 들어 차지 않는 이상 깨뜨릴 수 없다 할 것이어서 유리의 위치 및 부상 상태 등 사실관계의 연결상태를 논리와 경험칙에 의하여 판단할 때, 신청인은 유리를 발로 차면 다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용인한 채, 음주로 인한 흥분 또는 어떤 확인되지 않는 심리상태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고를 발생시켰다 할 것이다. 사건 제2005-263호(보험급여제한처분취소신청, 2005. 5.31. 결정)

연재를 마치며 애주가들께 울리는 경종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킨 때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위에서 살펴 본 사례 1, 2는 각각 형사법과 행정법규를 위반한 「범죄행위」에 기인한 경우이고, 사례 3은 범죄행위라기 보다는(손괴죄 성립 여부는 별론) 「고의」또는 「미필적 고의」로 사고를 발생 시켰기에 보험급여가 제한된 사건으로서 그 공통원인은 모두 음주에 따른 객기 또는 판단착오로써 우발적으로 「사고를 친」경우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사례 모두가 음주로 인해 「볼일 보는」과정과 연관되었기도 하지만….

이상과 같이 필자는 세 차례에 걸친 연재를 통해, 한국적인 정(情)이라는 것이 「술 권하는 사회」로 투영된 우리 사회에서, 자칫하면 예기치 못한 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생각컨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에 이르기를, 주인공 성진(性眞)이 수정궁 용왕의 대접을 받는 중에 「술은 마음을 흐리게 하는 광약(狂藥)」이라고 말하자, 「용궁의 술은 인간 광약과 달라 사람의 기운을 화창케 하니, 마음이 미란(靡爛)치 아니하다」라고 화답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 바, 일반적으로 속세에서의 술은 묘약(妙藥)보다는 광약에 가까운 듯 싶다.

모쪼록 술 자리와 그 결과라는 것이 「情따로, 法따로」되기 십상인 바, 애주가들께서는 벗들과 술로써 마음을 화창케는 하되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도록 자중하실 것을 삼가 당부드리는 바이다.    

1) 행정심판법 제6조 및 국민건강보험법 제76조 등에 근거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설치된 일종의 행정심판기구로서, 이의신청인(건강보험 가입자)과 피신청인(공단)간의 행정쟁송을 중립적 지위에서 처리함

2) 「25세 정도의 남자와 함께 삼겹살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중, 본인이 째려본다며 시비를 걸기에 말다툼후 복도를 걸어갔는데, 그가 갑자기 복도에 쌓인 빈 콜라병을 들고 1m앞에 있는 본인의 이마를 가격하여, 이마에 피가 나자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두 번 하였다.」

윤기종 | 국민건강보험공단 법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