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왜 마실까

연말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회환과 보람을 느끼는 때이다. 모이기 좋아하고 같이 노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삶은 갖가지 모임을 갖기 마련이다. 「위지동이전」에 「동이족은 음주가무를 즐겨한다」는 기록은 여전히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이다. 동창회, 직장, 이웃동네 등등 갖가지의 연말 모임이 기다리고 있다. 모임은 곧 술 자리를 동반한다. 만나서 반갑다고 한 잔, 아쉬운 한 해를 보내서 한 잔, 이래저래 술은 늘어간다.

한국인의 음주문화 - 차수변경, 술발·안주발, 술 잔 돌리기

15세 이상 한국인이 한 해에 마시는 술은 소주가 68병, 맥주가 248병에 이른다. 한 마디로 많이 마신다. 물론 한 잔도 안 마시는 사람이 있기에 일 인당 술 소비량은 무척이나 많다. 많은 술 소비는 한국의 술 문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인의 술 문화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 유명한 차수변경이 있다. 사실 차수변경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1차는 주로 회식형태로 벌어지게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참여를 권하고 심지어 강제적으로 자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2차, 3차로 이어지게 되면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인적 필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점차 가까운 사람들만의 자리로 이어진다. 또, 유래없는 푸짐한 안주 문화는 술을 좀 더 마시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술발, 안주발이라는 용어는 이제 술 자리에서 주당파와 비주당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몸에 해롭다는 술과 술을 취하지 않게 하는 안주의 묘한 동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술 잔 돌리기 문화이다. 술을 마시는 형태는 독작, 대작 그리고 술 잔 돌리기로 살펴볼 수 있다. 술 잔 돌리기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드문 문화이다. 때로는 위생상, 때로는 문화적 관습에 따라 터부시되곤 한다. 간염을 비롯한 위생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술 잔 돌리기는 일반적으로 한국의 술 자리 문화인 것이다. 사실 술 자리는 서로 어느정도의 친밀도가 형성된 사람들끼리 가지게 된다. 따라서 서로에게 술 잔을 건네는 것은 서로에 대한 관계를 확인하는 행사인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술 문화는 한국인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네 술 자리는 굳이 연말 뿐만아니라 연중행사이기도 하다. 한국 술 문화의 대표주자로서 폭탄주가 있다. 폭탄주때문에 망신을 당한 국회의원, 검사들의 얘기들이 1년 내내 들려온다.  

술에 취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폭탄주

폭탄주의 역사적 기원은 미국의 노동자,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빠른 시간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나왔다는 것이 정설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도 장원에 급제한 선비들이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 마시다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 기원이야 어디에 있든 간에 한국의 술 문화에서 폭탄주는 보편적 술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 주재 외교관들, 상사 주재원들과 한국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폭탄주에 대한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 온다.

폭탄주는 소폭(소주와 맥주), 일반 폭탄주(맥주와 양주), 회오리주, 충성주 등 다양한 컨텐츠를 자랑하고 있다. 소위 비싼 양주와 맥주를 대체하는 소폭은 대중들에게 있어서 일반 폭탄주의 대용을 자리한다. 폭탄주는 사실상 고효율, 합리적, 저비용 술이다.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술 자리의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는 중요한 기재이다.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도수가 높은 술 소비량이 세계 4위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술에도 계급성이 있다. 소주가 서민들이 애용하는 술인데 비해 위스키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게 된다. 연말의 경우에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들도 한 번씩 폭탄주를 통해서 위스키를 마시는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사실 비싼 위스키를 맥주와 섞어서 마시는 것은 주도에서 어긋난다. 말 그대로 고가의 위스키는 한 잔, 한 잔 향기와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럼에도 그 비싼 위스키를 음미할 틈도 없이 우리는 함께 마셔 버린다.

폭탄주가 군인들이나 검사들 같이 특수한 조직에서 애용된다고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술임에는 분명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술 주정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 이유는 오늘의 술 주정은 다른 사람이지만 내일의 술 주정의 주인공은 바로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폭탄주를 마시면 취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이 취하게 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난무하게 된다. 소위 폭탄주가 가져오는 결과들이다.

폭탄주 뿐만아니라 술에 의한 건강 문제는 너무나 당연하다. 웰빙이라는 문화적 유행에 역행하는 것이 술이다. 적게, 적당히 마시면 보약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마신다는 것이 문제이다. 직접적으로 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각종 내분비 계통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폭탄주를 마시려니 몸이 힘들고, 빠지려고 하니 소외되는 것 같고」

문제는 폭탄주가 가지는 사회적 문제들이다. 폭탄주를 통해서 끼리끼리 문화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폭탄주는 한꺼번에 제조해서 동시에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로 같이 취하자는 것이다. 취중에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끼리끼리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직내 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제나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다. 폭탄주를 마시려니 몸이 견디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빠지려고 하니 소외될 것 같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것이다.

폭탄주의 원인은 우선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빨리빨리 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술이 취하는 것이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버린다. 빨리 마시고 그래서 빨리 취하게 된다. 폭탄주에서도 그대로 들어난다. 술 자리에서 이야기는 폭탄주의 화염속에서 묻혀 버리게 된다. 술 자리를 갖게 된 계기는 간단한 이야기 속에서 끝나 버린다. 곧 빨리빨리 폭탄주를 돌리게 된다. 이렇게 폭탄주가 난무하는 것은 한국인들간의 의사소통 방법이 한정되어 있다는데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많은 시간 술없이 대화하기가 힘든 것이다.  

대안적 문화의 부재도 역시 폭탄주와 같은 술 문화가 변화되기 힘든 이유이다. 친구나 직장인들이 서로 만나서 할 것이 너무도 없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모두 모여서 온라인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폭이라면 또 몰라도 폭탄주의 경우는 경제적 부담도 된다. 아침에 술이 깨고나서 호주머니 속에 있는 카드 전표는 어제의 술 자리를 후회하게 만든다. 호기에 찬 계산은 기분을 즐겁게 하지만 아침의 카드 영수증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동일 | 부산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