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정신건강의 장애물, 시험
자정을 훨씬 넘은 시각에도 학교나 독서실에서 입시준비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때아닌 하교 길이 펼쳐지곤 한다. 수험생이 겪게 되는 불안이나 우울감, 자포자기상태 등은 통상 입시병 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나는 정신과적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입시병 또는 고 3병인데 이것은 서양사회에서는 보기 드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의 몇몇 나라에서 특징적이다.
일반인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입시병이 하나의 단일 질환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는 단일 질환이 아닌 우리 문화의 독특한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은 입시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기분장애, 불안장애, 기타 신경증적 장애, 그리고 일부 정신병적 장애들을 통틀어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에 따라 그 증상은 다양하다.
청소년기는 균형있는 성장과 발달, 건강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시기
청소년기는 인간 발달과정에서 가장 극심한 혼돈과 좌절, 도전과 격동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정상적인 성숙과정을 통해 성인의 성격구조를 구성할 수 있는 인격특성을 형성하고 구체화를 이루게 된다. 청소년기는 사회적으로 특정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예컨대 청소년들의 의상, 머리모양, 그들의 언어나 그들의 음악취미는 성인세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소년이 한 사회의 문화적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의 변화 또한 청소년의 심리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동기로부터 성인기로 이어질 때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동적인 이 시기를 보내게 된다.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80)에서 발간한 정신의학용어집에서는 청소년기를 성적, 정신 사회적 성숙을 가져오는 신체적, 정서적 과정으로 시작되어 독립과 사회적 생산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기까지로 잡고 있다. 즉,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기는 사춘기 또는 사춘기 2～3년 전에 시작된다고 보고 있으며, 성인과 같이 주체성을 확립하고, 독립심을 갖게 되고, 성인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자율성을 갖게되고, 이성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며, 가족원간에 성인적 관계를 유지할 때 청소년기가 끝난다고 보고 있다.
Anna Freud는 모든 청소년이 정상적인 정신증을 겪는다고 하였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대부분(80%)의 청소년들은 극심한 정서적 혼돈이나 정신과적 증상이 없이 청소년기를 잘 보내고 있다고 본다.
청소년 신경증 환자의 52%가 학업문제에서 스트레스를 느껴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바에 의하면, 청소년 신경증 환자의 52%가 학업문제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그 외의 많은 연구들이 입시 스트레스가 청소년 자아정체감 발달에 영향을 주고 정신병리의 주요 유발요인 및 악화요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는 입시에 대한 압박감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적용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학벌제일주의,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 대입여부가 성적으로 결정된다는 것 등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상태인 청소년기에 주어지는 부담감은 대단히 크다.
이러한 부담이 해결되지 않을 때 큰 시험을 앞둔 청소년들은 우울감, 불안감이 흔히 나타나며,그 밖의 양상으로 신경성 식욕 부진증 같은 섭식장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부의 경우, 갑자기 환자가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환청 등을 경험하는 수도 있으며, 이는 단기 정신병적 장애에서부터 정신분열증에 이르는 정신병적 장애로 진단되기도 한다.
입시 스트레스가 청소년 정신 장애들과 많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학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듯한 시각도 팽배해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소년는 균형있는 성장과 발달 그리고 건강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시기이며,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발달로 인해 다소 불안정한 위기의 시기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청소년들의 많은 수가 입시 스트레스를 잘 극복해내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느냐 아니면 자아의 붕괴냐 하는 위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배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입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증후군인 입시병이 발병한다면, 정신의료 기관을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고, 각 질환에 따라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사회구조 내에서 특수한 입시 스트레스가 점차로 사라지고, 교육의 방향도 건강한 자아정체감과 인격을 지닌 청소년들을 길러내는 전인적 관점의 교육체계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민수 / 고려대 의과대학 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우울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