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한 고통을 받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회복을 위한 여정으로 인도하고자 성장과정과 가족력 그리고 체험적 전향의 여정을 진솔하게 들려드리고자 한다.

풍성한 가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이른 새벽 산행을 한 후 묵은 땀을 진하게 흘리고 찬물의 신선함도 느끼고 나니 이제 사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며 회복을 위한 12단계 공동체의 친우(도반)들과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주시한다.

20여 년 나의 몸과 마음을 지치도록 술에 길들이고 왜곡된 신념 속에 살다가 「알코올의존증」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10여 년 조절망상 및 교활하고 불가사의한 병마와 싸우며 5년 여 동안 상담공부, 대학원에서 임상과 중독관련의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이제 본정신으로 돌아온 나의 참모습을 지켜보니 거듭 태어나는 삶이 이것인가? 하고 되새겨 본다. 이제 하루하루 맑은 정신으로 내 자신을 지키고 영적각성과 성장을 위하는 여정 속에 존재하는 길만이 나의 책임으로 알고 오늘도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통적으로 술 체질의 집안에서 태어나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술과 인연이 너무나도 깊다. 알코올성 중풍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알코올성 간암으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 14년 간 단주를 하시며 70세부터 술과의 인연을 끊고 선종하신 아버님, 저와 남동생 모두 심한 알코올의존증 환자이다.

우리 집안은 행사일 때마다 술잔치이다. 남자들은 선취형(술을 먼저 마신 후 식사)이었고 여자들의 아우성에는 아랑곳없고 무시되었으며 자녀들은 상처를 받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는 고립되고 철저히 현관문을 굳게 잠근 역기능가정의 산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부터 대학‧사회생활 모두 술에 대한 집착과 주당으로 군림하였으니 결국 가정과 사회생활은 파탄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밑바닥치기를 하였다. 20대 초반부터 술을 마시면 간헐적으로 필름이 끊기고, 집안이 어려워지고 사회적 혼란기에 반사회적인 불만을 토로하며 과음을 하고, 또 다른 쾌락의 늪 속의 방탕한 삶이었으니 길고도 긴 방황의 시기의 모습을 어찌 짧은 지면에 옮기겠는가?

해장술도 부족하여 집안 곳곳에 술을 숨기기도 하였고, 어는 때는 집 앞에 술을 숨겨두고 아침산책을 나간다며 공복의 짜릿한 술기운을 찬미도 하였다. 마시면 취하고, 기억할 수 없었다. 1978년 산업체 컴퓨터 특채교수로 임용된 후 10여년 후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1986년(36세) 합의이혼을 하고 아내는 두 아이를 남긴 채 떠나 버렸고 그 이듬해 직장도 잃었다.

 

병원에 들락거리기를 반복하고… 1987년 알코올의존증의 진단을 받다

이혼 후 1986년 여름학기를 마칠 무렵 술을 마시다가 의식을 잃은 후 깨어나 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겨울방학에는 시공간을 떠나서 마시게 되었고 밤이 두렵고 잠이 오지 않거나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 몸이 떨리면 숨겨 놓은 독주를 조금씩 마셔야 안정이 되었다(금단증상). 결국 정신과 병동(6개월)에 강제입원을 하게 되었고 퇴원을 하고 집에 와보니 모든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학교는 사표제출, 집은 인천으로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생활, 집에서는 한 모금의 술을 마시는 행위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바깥에서 은밀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한번 조금 마시면 안정이 되지 않아(내성) 어떠한 핑계를 대고라도 다시 나가 술을 마셔야 했고, 밤에 마실 술을 준비해 놓고 있어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입‧퇴원이 반복된 2년 후 치료진으로부터 A.A(단주모임)에 대한 소개를 받았으나 별 관심이 없었고, 「당신은 알코올의존자입니다.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충고와 함께 1987년 알코올 전문의로부터 진단을 받고 6개월간 약속을 하고 입원하여보니 20대 후반부터 정말로 다양한 병력을 가진 환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처음으로 A.A의 빅북(익명의 알코올중독자)에서 회복체험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재활의 노력은 시작되었지만…

퇴원 후 교회의 소공동체와 A.A모임을 나가도 술에 대한 갈망은 따라다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나는 알코올중독자이다. 이 사실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부모‧형제‧떠난 아내 모두가 증오스럽고 반사회적인 성향으로 길들어져 갔다. 병원에서 배운 회복을 위한 대처기술로 H.A.L.T(Hungry, Angry, Lonely, Tired)을 피하자」를 연상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2년 반 동안 컴퓨터 서적을 4권이나 집필하고, 무언가에 열중하면 술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노력도 했지만 결국 무너졌다, 분노와 자아성찰 없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절음주에 대한 망상과 은밀한 음주로 이어지는 결과는 입‧퇴원을 반복하고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나는 황폐해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우울의 연속이었고 후에 안일이지만 방어기제(부정‧합리화‧투사)와 왜곡된 중독의 신념 속에서 점점 나의 생은 무너져가고 있었다.

 

영적성장을 위한 알코올치료공동체의 삶을 선택하다

「나를 따르라.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하지 않았느냐...」 어느 날 꿈속에 들려온 음성과 「강가의 모래알들은 어느 집 담벼락의 벽돌이라도 되지만, 나의 삶은 저 강가의 모래알보다도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성찰 뒤에 영적귀의 삶으로 길을 선택하다.

컴퓨터 기업체, 대학 교단, 장애인 교육원, 공공근로자의 길을 거쳐 알코올․약물 클리닉의 임상카운셀러을 거쳐 전문적 교육을 받고 물질남용‧의존으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 있는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살길임을 인식하고 전문병원, 상담센터 등에서 상담과 교육을 담당하다가 이제 회복을 위한 12단계공동체의 상담실과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이른 새벽, 명상의 시간을 통해 「신과의 의식적인 접촉」 가지면서 남은 생을 술로 고통받는 분들과 그 가족과 함께 참된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위대한 힘이시여!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 동안에도 내 자신 회복의 여정을 떠나오니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면서 품위있고 유익한 삶의 길을 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소서. 오늘도 맑고 깨끗한 회복의 여정을 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세계를 기쁨과 환희 속에 바라볼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신양호 / 회복을 위한 12단계 공동체 원장,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