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직장인 음주행태와 기업의 대책」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4명 중 1명이 알코올 중독의 초기 단계인 알코올 의존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사회적 손실도 자그마치 14조 5000억 원에 달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가볍게 한 잔하는 것을 알코올 중독과 연관시키는 것에 반감을 갖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 마시는 횟수가 늘고, 이른바 「필름 끊기는」경우가 잦아지면 은근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에 3일이나 마시고 2차도 기본인데, 혹시 나도 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의심하며 내심 불안해 한다.

술 많이 마신다고 모두 알코올 의존증은 아니다.

물론 술 마시는 양이나 횟수만 가지고 알코올 의존증을 속단할 수는 없다. 의학적으로 알코올 의존증은 술에 대한 내성의 유무와 금단현상의 유무로 판단한다. 단순히 몇 병 마시는지, 몇 회 마시는지로 알코올 의존증을 진단하지는 않는다.

전문의들은 음주의 발전단계를 사회적인 음주, 문제음주, 알코올 남용, 알코올 의존으로 구분한다.

사회적 음주는 술을 마시긴 해도 필요에 의해 필요한 만큼만 마시는 경우로 다음 날 직장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고, 술이 가정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는 가장 바람직한 음주습관으로 알코올 의존증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음주는 술을 「필요 이상」으로 마시는 경우다. 필요 이상이란 많이 마시는 술자리도 아니고 다른 이들도 과음하지 않는데 자신만 유달리 많이 마시는 것을 말한다. 신체적 증상은 없으나, 술 마시는 횟수가 늘고 귀가시간이 자꾸 늦어지면 문제음주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개 문제음주자가 되면 본인이 문제를 자각한다. 스스로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염려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저 친구 술 참 좋아해, 그 사람 술 하나는 잘 마셔」라고 평가를 받으면 문제음주자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음주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기단계로,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여기에 속한다. 또, 문제 음주자 가운데 4명 중 1명은 결국 알코올 의존증에 걸리게 된다.

다음으로 알코올 남용자들은 술을 매일 마시지는 않고 취하지도 않지만 한번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는」이들이다. 그래서 1차 술자리가 끝나면 어떻게 해서든 2, 3차 모임에서 술 마실 기회를 만든다. 이들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취해 쓰러지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기억 손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는 지방간이 생기고 알코올성 간염을 앓을 수 있다. 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때에 따라선 술 문제로 직장에서 경고를 받기도 한다.

시간만 나면 술을 찾는 알코올 의존증

알코올 의존증은 진행정도에 따라 초기, 중기, 말기로 구분한다.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2~3일 술을 마시고 몸을 회복시킨 후 다시 음주를 한다. 직장인의 경우 평일에는 많이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주말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술을 몰아서 마신다. 신체적으로는 간이 많이 손상돼 피로감을 빨리 느끼고,  기억력과 집중력도 떨어지게 된다. 이 같은 초기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일상생활은 가까스로 유지하지만 술을 자제하지 못한다. 상당수가 스스로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를 고치고 싶어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알코올 의존증 중기에 이르면 초기와 반대로 자신의 문제를 부정하게 된다. 술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져 심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 의지도 없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해 주로 집에서 혼자 마신다. 이 때문에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고 가족관계도 악화돼 이혼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알코올 의존증 말기에 이르면 누가 봐도 의존증 환자처럼 보인다. 술 때문에 사고를 저지르고 알코올 유발 정신병, 알코올성 치매로 고통받는다. 심적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가장 좋은 치료 시기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문제음주 시기

이 같이 음주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본인이 느끼거나 주위의 지적을 받으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회계사로 일하는 김모(37세, 마포구)씨도 문제음주 단계에 병원을 찾아 음주문제를 해결했다. 업무상 술을 마시다 술에 탐닉하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부인의 권유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김씨는 매주 1회 진료를 받으며 주 3,4회 마셨던 술을 1회로 줄였다. 치료 3개월 후, 김씨는 술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고 현재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음주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 가운데 김씨처럼 초기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치료 시기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문제음주 시기이다. 문제음주 단계에 치료를 받으면 단기간에 정상으로 되돌아가 사회적인 음주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자신이 알코올 의존적이란 걸 알게 되면 즉시 전문가를 찾아 이를 바로 잡아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의 삶, 나아가 사회에까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무형 | 다사랑중앙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