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광고 회사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여성 가운데 55%가 「술을 마신다」고 응답했으며, 날마다 술을 마신다는 상습 음주자의 비율도 전체 응답자의 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음주자의 구성도 크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경기가 지난 노년층이나 직업 여성 등 「특수한 계층」이 여성 음주자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던데 비해 요즘에는 계층의 구별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모든 여성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여성의 음주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어울리는 수단으로 적당히 술을 마신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또,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신다면 남편의 폭음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술은 항상 대화를 동반한다.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신다면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다는 점에서도 여성, 특히 가정 주부들의 적당한 음주는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여성의 음주, 빨리 취하고 음주장애도 많다.

그러나 「술 마시는 여성」들이 주의해서 볼 대목이 하나 있다. 「술에는 남녀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공평하게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을 타고 났다. 각종 음주질환이나 알코올 의존증의 위험도 남성에 비해 2배나 된다. 절대로 남성의 기준에 맞춰서 음주량을 조절해서는 안된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알코올을 소화할 수 있는 용량이 남성의 절반 밖에 되지 않으므로 빨리 취하고 음주 장애도 많아지는 것이다.

특히, 위험한 것은 상습적인 음주이다. 매일 술을 마실 경우 남성은 10년이 지나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되는 반면에 여성은 6년 밖에 지나지 않는다. 알코올 처리 공장인 간장의 하루 작업량이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감을 밀어 넣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 음주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여성 음주가 보편화된 역사가 서구에 비해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 않아 여성 알코올 의존증이 사회 문제로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년층 이상 가정 주부들의 사정은 심각하다. 의외로 상습적인 음주자가 많으며, 알코올 의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정 주부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50대 가정 주부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50대 가정 주부들 가운데 7.9 %가 하루도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이다.

알코올 의존 현상을 보이는 가정 주부의 비중도 나날이 높아져

「키친 드렁커」라는 말이 있다. 요리에 맛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는 맛술을 조금씩 마시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술의 포로가 되어버린 주부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키친 드렁커」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여성음주자 가운데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술에 입을 대는 사람이 약 27.6%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고 가정 살림도 넉넉한 편에 속하는 보통 사람들이 「키친 드렁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중년을 넘긴 평범한 주부들의 음주가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술을 마시는 까닭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사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이혼이나 남편의 무관심 등 가정 불화가 음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장성해서 독립하게 되면 부모들은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기 마련인데, 이런 순간을 슬기롭게 견디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머지 않아 술잔을 놓지 못하는 의존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중년 여성들이 쉽게 술의 포로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폐경기 이후에 나타나는 특유의 생리현상과 상실감을 들 수 있다. 폐경기를 전후해서 알코올 의존증이 많이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까닭으로 혼자 마시는 술은 일종의 「홧술」에 속한다.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서 외로움을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그러다보니 몸도 빨리 축난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의존이다. 술 이외에는 자기의 고민이나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가 없다보니 술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다.

여성 호르몬과 알코올

폐경기의 여성은 알코올 의존증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데, 여성 호르몬이 알코올 의존증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 호르몬 속에 들어있는 에스트라디올이라는 물질이 간장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할동을 방해한다.

폐경기의 여성들 가운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폐경기에 접어들면 여성 호르몬의 활동은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폐경기 이전에는 조금만 마셔도 취기를 느끼던 사람이 폐경기에 접어들면 어지간히 마셔도 좀처럼 취기를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술 마시는 양이 늘어나기 쉽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알코올 의존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임신부가 술을 마시면?

아이를 가진 여성이 술을 마시면 기형아를 낳을 수 있다. 임신 중 음주가 원인이 되어 기형아를 출산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임신부가 마신 알코올은 태반을 따라 태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머니 몸의 혈중 알코올 농도와 아기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같아지기 때문이다.

임신부가 마신 알코올 때문에 태아가 입는 상처를 의학용어로는 「태아성 알코올 증후군(FAS)」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의 특징은 출생을 전후해 성장이 늦어지고, 눈 사이의 폭(미간)이 좁으며, 윗 입술이 두드러지게 얇은 용모를 갖게 하고, 지능 장애나 발육 부진 등 중추신경계의 이상을 보인다.

산모가 담배를 피웠을 때 나타나는 「태아성 담배증후군」의 피해도 심각하다. 일본 국립 정신신경센터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담배 증후군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는 FAS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의 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어머니가 임신 중에 하루 평균 15개피 정도의 담배를 피운 것으로 나타났는데, 흡연량이 늘어날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부에게는 약간의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절대 해롭다. 특히 임신 초기와 말기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다른 시기에도 술과 담배를 삼가해야 하겠지만 특히 초기와 말기에 마시는 술은 그 피해가 더욱 크기 때문에 「절대로」삼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임신 초기 3개월 사이에 술을 마시면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고, 후기 3개월 동안은 성장 부진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출산 후 1개월 동안에도 아기에게 먹이는 모유에 알코올이 녹아 들 우려가 많으므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정태 | 의정부성모병원·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