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수같은 술에 빠질 줄은 몰랐지. 남편이 매일 술 마시는 게 지겨워서 그거 잊어보려고 술을 입에 댔다가 이 지경이 됐어요』

술 때문에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신모(40세, 서울)씨는 알코올 의존증 말기 환자다. 늘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는 남편이 보기 싫어 술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다 그만 자신이 알코올 의존증에 걸리고 말았다.

결혼 15년차 주부 이모(36세, 서울)씨. 어린 나이에 시집살이를 시작해 회사원인 남편과 자녀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그에게 7년 전 부터 문제가 생겼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깊어 가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 한 잔, 두 잔, 석 잔. 조금씩 입에 댄 술은 어느새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알코올 의존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술자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보건조사에 따르면 술을 마시는 성인여성 가운데 알코올 의존 성향을 가진 사람은 1998년 3.1%에서 2001년 10.5%로 3년 사이에 3배로 증가했다.

여성의 알코올 의존 성향, 3년 사이 3배로 증가

성인 여성 음주자가 530여 만 명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할 때 알코올 의존 성향을 가진 여성은 55만 여 명에 이르는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남성은 24.1%에서 26.1%로 약간 느는데 그쳤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술 문제에 관대한 편이긴 하나, 여성의 음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알코올 의존자들은 냉대와 편견으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홀로 방치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남성 환자는 음주 중단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받고 있는 반면 여성은 싸늘한 시선 속에 방치돼 치료의 기회를 놓치기 일쑤.

「여자끼리 술집에 들어섰을 때 못마땅하게 보는 남자들의 눈초리가 싫어서 혼자 집에서 마셨죠(이모씨, 36세)」

「남편이 술을 마실때는 그려려니 하던 중학생 딸이 제가 술을 마시니까 대화도 하지 않으려고 하더군요(이모씨, 38세)」

여성의 음주 원인, 부부갈등이 가장 커

2003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기·미혼녀 451명을 대상으로 여성음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여성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남편과의 갈등(228명)이 1위 ▲시부모와의 갈등(103명) ▲직장에서의 근로조건 차별(104명)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알코올의존증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이종섭 원장은 「남성은 단순히 술을 즐기다 알코올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자신을 둘러싼 부부문제나 시댁문제 등 생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함 때문에 술에 탐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우울증비율, 이혼율 높아

이런 이유로 여성 알코올 의존자 중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알코올 의존증 외에 2차 질환을 앓는 환자가 많다.

다사랑중앙병원·한방병원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58명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알코올 의존증과 함께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가 여성의 경우 78.3%로 남성(63.4%)보다 15% 이상 많았다.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우울증에 더 잘 걸리는 이유는 남성보다 주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부터 버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남성의 알코올 의존증은 가정의 경제적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지만, 여성의 경우 직접적인 피해가 눈에 띄지 않아 주변의 치료의지가 소극적」이라며, 「그래서 기혼 환자 가운데 이혼이나 별거 상태에 있는 여성 환자의 비율이 남성 환자 비율보다 늘 높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다른 남자 환자와 어울리는 아내 용서 못해

알코올 의존증 치료는 대개 2~3년의 기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남성 환자는 한두 번 재발해 재입원을 해도 아내가 잘 참아주는 반면, 여성 환자의 경우 병이 재발했을 때 이를 참고 용서해 주는 남편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남편 말을 안 듣고 계속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아내를 구타하거나, 집 안에 감금하는 등 여성의 알코올 의존증을 안으로 은폐시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여성 환자가 병원의 회복 모임에서 다른 남성 환자와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에 질투를 느껴 병원 치료 프로그램 참여를 막는 남편도 있다.

자녀들도 술 마시는 아버지보다

술 마시는 어머니에 더 부정적

자녀들도 어머니의 음주문제에 부정적이긴 마찬가지이다. 이 병원이 경기도 한 중학교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음주문제에 관해 조사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일주일에 3회 이상 음주를 하는 아버지는 30.6%, 어머니는 7.6%, ▲음주를 거의 않는 아버지는 27.3%, 어머니는 44.1%로 아버지의 음주횟수가 어머니보다 높았으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술 취한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버지가 한심해 보인다」는 학생은 11.5%였던 반면 「어머니가 한심해 보인다」라고 답한 학생은 이보다 많은 16.5%를 차지했다.

이 원장은 「오늘날 여성은 학교나 사회에서 남성과 똑같이 모임에 참여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길 권유받고 있지만, 여성은 술이나 약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대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여성이 음주문제를 드러내놓고 치료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남성 알코올 의존증 전문병동은 있어도 여성 전문병동은 없는 우리 실정에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마저 여성 알코올 의존자를 외면하면 이들이 술에서 벗어날 길을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며, 여성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위한 주변의 사랑과 보살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김정연 | 『건강생활』 기자
도움말 : 이종섭 | 다사랑중앙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