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전 과학기술부 부총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면 편안하다. 그는 육사 출신이지만 군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체신부 차관, 체신부 장관,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과학기술부 장관 등 오랫동안 차관과 장관을 지냈지만 딱딱하지 않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교통부를 출입하던 10여 년 전 출입기자 송년회 자리에서 가볍게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할 때에도 그는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2차를 가는 것이 당시 익숙한 송년회 풍경이었는데, 교통부 간부들을 이끌고 기자들과 2차를 가 폭탄주를 돌리는 것은 차관의 몫이었다.

경기고를 나와 육사에 간 오 전 부총리는 육사생도 시절 3금(술, 담배, 여자) 규율에 따라 엄격한 절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소위 계급장을 달고 포병 장교로 있으면서 전방에서 관측장교, 작전보좌관 생활을 할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1966년부터 육사에서 교수로서 전자공학을 가르쳤다. 퇴근 후 종종 술집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68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5년이란 짧은 기간에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그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술이 안 받아 술과 멀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위를 하고 돌아와 육사 전자공학과 과장으로 있으면서 술이 센 전통을 지닌 학과의 문화를 바꿔 놓았다. 그 비결은 프로젝트를 많이 따와 다른 교수들이 연구하고 논문 쓰느라 바빠서 술 마실 시간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5공 시절 그는 체신부 차관으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전전자교환기 개발 등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을 궤도에 올리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해 과학기술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지휘자로 명성을 날렸다. 5공 시절이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폭탄주 문화가 시작된 때이고 특히 군인, 검찰간부, 언론인, 정치인, 관료 등이 이를 확산시킨 장본인들이다.

◈ 군인이 잘 나가던 그 시절 모임에서 폭탄주나 술 권유를 많이 받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 내가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권유하지 않았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술을 권하거나 폭탄주를 돌리기도 했다. 양주, 맥주와 색깔이 비슷한 보리차나 우롱차 등을 음식점 종업원이 준비해 줘 이를 마시면서 분위기를 맞춰주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서 술과 관련해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

◈ 술을 마셔야 대인관계가 좋아진다고들 흔히 말한다.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맑은 정신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 이루어진 관계가 진정 좋은 관계다. 어느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두 부서가 하도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잘 지내도록 이야기하자 며칠 뒤 서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며 대화한 뒤 사이가 좋아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1주일 정도 지나니까 다시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우리나라 술 문화를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 첫째, 폭탄주를 마시지 않으면 술을 더 먹게 된다며 「폭탄주 예찬론」을 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특히 17년 산 또는 30년 산 밸런타인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졸부나 사회지도층의 비뚤어진 자기과시이다.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미국에서는 부자도 이런 술 한두 잔으로 1~2시간을 보낸다. 둘째, 술은 자기가 원하는 종류와 양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술의 양이나 종류를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통일해야 하는 우리 술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우리의 술 문화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술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민주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자세다. 술 잔을 돌리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입을 댄 술잔에다 술을 부어 남에게 주는 것은 보건위생 측면에서도 매우 나쁘다. 체신부 차관으로 있을 때 아프리카에서 온 귀빈을 접대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2개월 간 병원 입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C형 급성간염에 걸려 고열 등으로 고초를 겪은 모양인데 그가 한국에서 이런 저런 술 접대를 여러 곳에서 받으면서 감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해보았다.

◈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은 술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당당하게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을 권리, 술을 조금만 마실 권리가 있음을 술을 권하거나 술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그는 장·차관 외에도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동아일보사 사장, 아주대 총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을 맡았다. 이들 자리는 대개가 많은 사람들과 교유해야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신문사 사장 자리에 있으면서도 술을 멀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외유내강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건국대가 총장으로 모시기로 해 오는 9월부터 다시 대학총장의 길을 걷게 됐다. 오 전 부총리는 아직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다. 자신이 투입돼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라고 판단되면 그곳이 어딘가를 따지지 않고 달려갈 생각이며, 건국대 총장 초빙에 응한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 이제 60대 중반(66세)을 훌쩍 넘긴 나이인데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 주말마다 골프를 합니다. 일이 있어서 못할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필드에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주중에는 2~3차례 휘트니스센터 등에서 수영을 하거나 러닝머신에서 가볍게 뛰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당뇨를 걱정한 적도 없고, 고혈압 약을 먹지도 않습니다.

건강해야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 오명 전 부총리가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 사회 지도층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종주 | 『건강생활』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