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호 | 회복을 위한 12단계 공동체 원장, 사회복지사

「저는 1987년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회복의 여정을 가고 있는 알코올 의존자입니다. 수차례의 입원, 상담, 교육의 과정을 거쳐 같은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과 함께 12단계 모델을 중심으로 한 치료공동체의 일원으로 알코올상담을 하면서 저 자신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재활을 포기했던 한 형제의 회복여정

3년 전 알코올의존 전문클리닉에서 처음으로 S형을 만났다. 90년대 후반부터 반복되는 입원과 재발로 인해 가족과 친지는 물론 가족해체를 결심하고, 본인도 자포자기하여 사회적인 재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이 단·장기입원치료도 포기하면서 외딴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준비하던 중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하고 필자가 전에 근무했던 병원의 통원치료 및 상담센터를 거쳐 회복을 위한 12단계 공동체(12 STEP HOUSE)의 일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분이다.

S형은 퇴원 후 몇 개월간 순응과 수용의 자세를 보이는 듯 했다. 『가족이 받아들이기만 한 것도 행운이지요. 지난 세월 모두 다 제 탓인걸요. 요즈음은 술에 대한 갈망이 전혀 없는데 제가 알코올 의존자인 것은 확실해요?』라고 할 정도였다. 「알코올 의존의 경우 술에 대한 갈망은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죽음에 이르도록 가져간다는데…」라며 자신과 타인들의 임상체험에서 얻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나는「정말 다행이군요. 술 생각이 없다니」라고 지지적인 표현을 하면서 S형과의 만남을 매주 가졌다.

그러나 몇 개월 쯤 지나 마른주정 증후군(원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행동 및 불만, 짜증 등)을 나타냈다.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불만 및 주로 관계성의 불편함 등을 호소하는 것이 그 것. 부인이 자신을 남편으로 대하지 않으며, 자녀들은 아버지로서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의존자의 회복에 대해서 너무 가족들이 모른다면서 힘들면 집 밖으로 나와서 담배만 연신 피우고 「옛날 같으면 벌써 두 세병은 마셨을 텐데…」 그래도 술은 마시지 않았다며 자기 자신이 신기하단다.

이 때가 격려와 지지적 표현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정말로 힘이 들겠군요」 「타인이 변화시킬 수 있나요.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라고 말하며 평함을 청하는 기도를 권했다.  

6개월 쯤 지나 「제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 못 견디겠어요. 실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몰래 두 번 술을 조금 마셨거든요」라고 자신을 드러냈다. 「그래요? 마셔보니 느낌이 어땠어요?」라고 묻자 「정말 기분이 안 좋았어요. 술을 마신 느낌이 안들어요」라고 호소한다. 바로 그 순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지난 세월, 나도 은밀한 음주를 하면서 생체실험(술을 조절해서 마시려는 시도에 대한 나의 표현)을 얼마나 많이 하였던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로, 마시다 남은 술을 버리기도 해 보았다. 그 때마다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시지 않으면 더 마시고 싶은 욕구로 심한 마른주정(짜증을 내고, 시비를 걸고, 다시 술을 마실 구실을 찾아 해매는 행위)을 하다가 결국은 취하도록 마시는 나의 체험을 들려 주었다.

『S형은 저보다 훨씬 솔직하고 용기가 있군요. 저는 수년 동안 조절망상(술을 조절해서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에 시달리고, 은밀한 음주를 하고서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밑바닥 치기(신체·심리·사회·영적)를 하고야 온전한 정신이 들었어요. 죄책감으로 시달리지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함께 서로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라고 위로와 격려를 했다. 영적각성의 순간이었다.

죽음 아닌 회복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순간 즉, 받아들임이 이루어지는 체험은 「밑바닥 치기」를 하면서 일어난다고 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진솔하게 돌아보면 몸은 알코올에 길들여졌고, 술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설 땅이 없고, 가족은 지치고 영적으로는 황폐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족과 주변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

「죽음 아니면 회복의 길」 두 갈래의 길만이 있다. 이제껏 경험하지 않은 길로의 여정은 물론 두렵고 고통의 연속이겠지만, 전혀 경험하지 않는 세계가 펼쳐지며 조금씩 평온함을 얻을 수 있으니 맑은 정신으로 떠나는 삶으로의 선택-은총의 순간이다. 또한 체험 속에서 얻은 지혜를 타인과 나누는 일이 주어졌으니 이 얼마나 은총인가? M.스캇펙이 쓴 「아직도 가야 할 길-끝나지 않는 여행」에서 「중독 : 신성한 질병」이라는 글을 권유하였다.

「오늘을 주시하라」, 「지금 여기에」 그리고 물 흐름데로 살아가는 회복 중인 분들에게는 가족과 주변의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오늘도 우리 공동체의 분들은 다음의 공동이념 속에서 회복을 위한 여정-12단계적 삶으로의 길을 따라간다.

첫째,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 혼돈과 극단적인 행위를 피하고,

둘째, 삶의 초점을 유지하기 -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며,

셋째, 삶의 책임을 유지하기-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책임을 느끼는 삶으로.